자유게시판 강릉고, 추억 그리고 야구에 대한 단상……
페이지 정보

본문
강릉고, 추억 그리고 야구에 대한 단상……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날씨도 잔뜩 찌푸려 있습니다.
다음주 목요일 대구 상원고와의 첫 경기로 우리 모교가 황금사자기에 다시 한 번 도전합니다. 아무쪼록 아무도 다치지 말고 좋은 성적을 거두길 우리 동문들 모두와 함께 바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저는 노암초등학교(7회)를 졸업했습니다. 기아의 이재주 선수랑 초등학교도 동창입니다. 원래 동해시 북삼초등학교를 6학년 가을까지 다녔습니다.
제가 3학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동부그룹의 후원으로 동해시의 많은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생기게 됩니다. 프로가 출범하기 이전에는 고교야구가 정말 인기 있었죠. 저 역시 1980년 초반 선린상고의 박노준 선수를 시작으로 1982년 OB베어스 어린이 회원을 하면서 야구라는 스포츠에 매료 되게 됩니다.
제가 살고 있었던 동해시 북삼동은 시골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문방구에서 파는 저가 야구글러브를 가지고 야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모님께서는 야구를 좋아하는 저에게 좋은 글러브를 사주시기 위해 강릉에 있는 체육사에까지 오셔서 글러브를 사주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 동해시와 강릉은 어린 저에게 차로 가도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시간에 멀리 던지기를 하는데 3학년이었던 제가 35m 인가를 던져 반에서 1등을 한 계기로 야구부에 들어갈 뻔 합니다. (결국 야구 선수를 못했다는 거죠. 당시 부모님의 반대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야구를 했다면 박찬호, 조성민, 임선동, 손경수와 함께 92년 황금학번이 되었을 지도…… ^^; 그래도 어려서 어깨 하나는 강견이라는 소리를 쭉 들은 지라 고교3학년 때 체력장에서는 멀리던지기 만점인 62m인가를 가뿐히 넘겼습니다. 그러고 보니 친구 몇 명 대신 제가 던지기 해줘서 만점 받아 줬네요. ^^) 당시 야구부를 가르치던 코치는 이웃 북평고등학교 야구부 선수였는지 코치였는지 기합을 주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안타깝게 북평고등학교는 1991년 해체되었습니다.
결국 강릉으로 전학 와서 1987년 중학교2학년 어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만 해도 OB의 부진과 함께 야구를 잠시 잊고 살았던 시기였죠.
당시 강릉고 1학년이었던 형(27기), 부모님 과 함께 청룡기 야구 준결승을 라디오로 청취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도 상대는 이번 청룡기때와 마찬가지로 경남고였습니다.
당시 우리 강릉고는 3학년이었던 좌완 민원기 선수와 2학년인 우완 박상근 선수를 앞세워 청룡기 준결승에 오르지만 바로 이 경남고와의 연장 승부에서 다 이겨놓은 경기를 12회 12대11로 지고 말죠. 당시 경남고 투수는 좌완 김홍집 선수와 우완 윤형배 선수가 팀 주축이었습니다.
집에서 탄성과 환호를 하면서 식구들 모두 작은 카세트 모노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던 기억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습니다. 얼마 전 청룡기 결승에서의 기억도 20년이 지나면 그 때의 기억과 함께 정말 소중한 추억으로 남겠죠?
두 번째 에피소드
우리 강릉고를 졸업한 야구선수 중 프로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는 1987년 청룡기 4강 주역이었던 LG 좌완 민원기 선수(88년 졸업)와 현재 태평양과 현대를 거쳐 기아에서 뛰고 있는 이재주 선수(92년 졸업)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동국대를 졸업하고 1993년 2차지명 1순위였던 OB베어스에 입단한 박상근 선수(89년 졸업)가 강릉고 출신 선수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강릉고 26기 선배님이시기도 하시죠.
당시 박상근 선수는 150km/h를의 강속구를 소유한 미완이었습니다. (비공식 기록으로 경기 중 159km/h 도 찍었다고 하고 1993년 OB베어스 팬북에는 160km/h를 던지는 강속구 투수라고 소개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삼성에서 굉장한 활약을 한(선동렬 선수와 맞짱 투구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사이드암 박충식 선수를 지명하지 않고 한 선택이었는데 결국 1998년 쌍방울을 거쳐 2001년 은퇴를 하고 맙니다. 통산 2승이라는 아쉬운 성적으로요.
실제 잠실구장에서 몇 번 박상근 선수가 던지는 것을 봤습니다. 모교 선배가 그것도 강속구 투수가 직접 마운드에서 던진다는 것은 후배로서 굉장히 뿌듯한 일이었습니다. 홍익대를 졸업하고 LG로 입단한 민원기 선수는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OB의 박상근 선수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후 박상근 선수는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OB베어스 원년 스타이자 불사조란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박철순 선수와 맥주를 한 잔 하며 두산베어스 명예기자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박상근 선수와 함께 선수 생활을 잠시 하고 이후 투수코치로 있었기 때문에 박상근 선수에 대한 기억을 여쭤 봤습니다. 저의 모교 선배님이라는 말과 함께요.
그랬더니 박철순 선수께서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불펜에서는 최고였지. 공도 무척 빨랐고…… 그런데 마운드만 오르면 영 그렇지 못 한 거야. 제구력도 안 좋아지고 볼도 불펜처럼 빠르지 않았지. 보니까 몸이 너무 뻣뻣했어. 투수는 부드러운 몸을 타고나야 하는데 몸이 너무 뻣뻣했지. 참 안타까운 선수였어.”
자랑스런 강릉고 선배이자 1987년 청룡기 4강의 주역이자 제가 좋아하는 프로야구팀에 입단한 우리 박상근 선수는 그렇게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
현재 한화의 양 훈 선수와 삼성의 조영훈 선수가 속초상고 출신으로 1군 무대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고 강릉고 출신으로 기아에서 지명타자로 활약하고 있는 이재주 선수도 있지만 강원도 출신 선수로 최고의 활약을 보이고 있는 선수는 원주고 출신의 두산의 안경현 선수(88년 졸업)입니다. (한 때 원주고 출신 안병원 선수(92년 졸업)도 대단했었습니다. 이 선수 때문에 제가 고교를 다닐 때 강원도 예선 통과 자체가 몹시 어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두산베어스 선수이며 같은 강원도 출신인 안경현 선수와 몇 번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같은 동향이라 ‘강원도의 힘!’ 이라며 파이팅을 부탁 드렸습니다. 우리 동문 선수가 제가 응원하는 두산베어스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과 부러움이 교차되면서요.
저는 지난 2006년도 2월 두산베어스 동계 전지 훈련 캠프인 일본 쓰쿠미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원주고를 졸업한 안경현 선수에게 저희 강릉고 이야기를 했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강릉고요…… 제가 학교 다닐 때 강릉고에 매 번 깨졌어요. 그래서 지역예선 통과 하기도 어려웠다니까요. 저는 강고에 매 번 진 기억 밖에 없습니다.”
그런 대화를 하고 나서 저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안경현 선수가 88년 고교를 졸업했으니까 당시 우리 강릉고에는 민원기 선수(88년 졸업)와 박상근선수(89년 졸업)가 맹활약 하던 동시대 선수였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당시 우리 강릉고의 벽을 넘지 못했던 거죠.
당시 가슴 뿌듯함은 참 오래 기억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강릉고 야구 선수들이자 후배님들과 언제나 우리 동문들이 그들과 함께 야구장에서 뛰고 있다는 생각 합니다. 다만 초록잔디 위 그라운드 안이냐 아니면 울타리 넘어 응원석이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강릉고 야구부 파이팅~!
29기 최 병 한
- 이전글홍콩에서... 07.06.25
- 다음글지난 정모 참석자 명단입니다. 07.06.2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