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언론에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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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은 있다.’ 과거 전통적 유교 사회 시절에는 처녀가 애를 낳으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또 말을 해봐야 소용도 없었고, 사회는 들어주지도 않았고 들어줄 마음도 없었다. 이유야 어떻든 애를 낳은 처녀는 무조건 그 사회에서 돌이킬 수 없는 패륜녀가 되는 것이고, 사람들은 미친x, 나쁜x이라고 손가락질 했던 것이다.
유교적 가치관이 점점 퇴색되어 가는 요즘은 처녀가 애를 낳아도 말을 할 수가 있다. 처녀 스스로도 당당히 말을 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도 처녀가 왜 애를 낳았는지 알고 싶어 하기도 하고 말을 들어주기도 한다. 처녀가 애를 낳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몸을 함부로 굴려서 어느 남자가 애 아버지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애인과 뜨겁게 연애를 하다가 피임에 실패를 하여 낳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결혼 날짜를 받아놓고 성급해서 낳은 경우도 있을 것이고, 운이 나빠 강간을 당하여 낳은 경우도 있을 것이고.......사람들은 그 처녀가 어떤 이유에서 애를 낳았냐는 것에 따라서, 다른 방법과 가치로 그 처녀를 평가할 것이다. 그래서 그 처녀는 과거처럼 무지막지하게 사회적 냉대 속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거나 사회에서 영원히 퇴출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사회가 개방화 되어 간다는 얘기는 합리성을 찾아간다는 말이기도 하고 인간성을 찾아간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개방적이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바람직한 것이기도 한 것 같다.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큰 기둥 중에 하나가 언론이다. 언론의 가장 큰 역할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언론은 진실을 찾기 위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그것만이 언론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고, 그것 때문에 현대 사회는 언론을 믿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언론을 보면, 언론의 가장 큰 목적을 소홀히 하는 것 같다.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착각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문제는 그 착각이다. 그 착각은 기사(사실,fact)를 얻으려는 조급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다른 언론사보다 더 빨리 기사를 내보내려고 하는 기자들의 경쟁심도 원인이 될 것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는 범죄행위에 해당되므로 여기서 말하고 싶지도 않다.
기사(사실,fact)는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특히 복잡한 사건이나 의혹이 큰 사건이나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fact는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사건의 진실(true)은 사실(fact)관계의 유기적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즉, 어떤 fact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fact가 필요하고 fact와 fact가 결합되어 다른 fact로 연결되어지는, fact와 fact 사이에는 원인과 결말이 항상 존재한다. 즉, fact 하나만 으로서는 절대로 진실(true)을 말 할 수도 없고 밝힐 수도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황 교수 사건에서, 기자회견 도중에 텔레비전 자막의 짧은 글들 - ‘줄기세포는 없다’ ‘황 교수가 논문조작을 시인’ - 기자들은 당장 황 교수의 말을 받아 적기에 급급했다. 그 파장은 엄청났다. 국민들은 그 짧은 글만으로 황 교수가 희대의 사기꾼인줄 알았다. 자랑스러웠던 우리나라가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의혹은 커져만 갔다. 그때, 황 교수의 기자회견을 충실히 지켜보고 진실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를 생각하고 진실을 찾아야겠다는 사명감이 언론사들에게 있었다면 그런 무지막지한 fact만으로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의혹을 갖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 후로도 언론은 계속해서 그런 식이었다. 작은 fact에 급급하여 진실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신중하게 차분하게 기다리며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국민들의 의혹을 풀어줄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국력 손실과 사회적 파장이 있었는가. 심지어 유력한 지식인들조차도 거기에 가담하여 진실을 왜곡까지 시켰다. 자기만의 논리대로 지식인들은 언론에서 떠들어 대었고, 언론은 가감 없이 그대로 방송을 했다. true은 논리로 설명되어질 성질이 아니다. 오로지 fact와 fact의 유기적 관계만으로 성립되어지는 것이다. 지식인들의 논리는 진실을 왜곡시키는 함정인 것이다. 거기에도 언론은 실수를 한 것이다.
언론은 처녀가 애를 낳았다는 fact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처녀가 왜 애를 낳았는지의 true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지식인들의 논리로 진실을 희석시키거나 왜곡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논리는 진실을 밝히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로지 fact와 fact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잘 연구하고 사건을 수직 수평으로 심층 해부해서 진실을 밝히는 것에만 모든 것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판단은 국민들이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fact 조차도 잘못 판단하여 방송을 하고, 그것 때문에 진실 조차도 호도되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손실과 의혹을 불러일으킨 한 언론사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그리고 그 언론사가 행한 범죄행위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놀아난 많은 지식인들에게도 다시 한번 진실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유교적 가치관이 점점 퇴색되어 가는 요즘은 처녀가 애를 낳아도 말을 할 수가 있다. 처녀 스스로도 당당히 말을 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도 처녀가 왜 애를 낳았는지 알고 싶어 하기도 하고 말을 들어주기도 한다. 처녀가 애를 낳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몸을 함부로 굴려서 어느 남자가 애 아버지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애인과 뜨겁게 연애를 하다가 피임에 실패를 하여 낳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결혼 날짜를 받아놓고 성급해서 낳은 경우도 있을 것이고, 운이 나빠 강간을 당하여 낳은 경우도 있을 것이고.......사람들은 그 처녀가 어떤 이유에서 애를 낳았냐는 것에 따라서, 다른 방법과 가치로 그 처녀를 평가할 것이다. 그래서 그 처녀는 과거처럼 무지막지하게 사회적 냉대 속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거나 사회에서 영원히 퇴출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사회가 개방화 되어 간다는 얘기는 합리성을 찾아간다는 말이기도 하고 인간성을 찾아간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개방적이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바람직한 것이기도 한 것 같다.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큰 기둥 중에 하나가 언론이다. 언론의 가장 큰 역할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언론은 진실을 찾기 위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그것만이 언론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고, 그것 때문에 현대 사회는 언론을 믿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언론을 보면, 언론의 가장 큰 목적을 소홀히 하는 것 같다.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착각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문제는 그 착각이다. 그 착각은 기사(사실,fact)를 얻으려는 조급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다른 언론사보다 더 빨리 기사를 내보내려고 하는 기자들의 경쟁심도 원인이 될 것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는 범죄행위에 해당되므로 여기서 말하고 싶지도 않다.
기사(사실,fact)는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특히 복잡한 사건이나 의혹이 큰 사건이나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fact는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사건의 진실(true)은 사실(fact)관계의 유기적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즉, 어떤 fact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fact가 필요하고 fact와 fact가 결합되어 다른 fact로 연결되어지는, fact와 fact 사이에는 원인과 결말이 항상 존재한다. 즉, fact 하나만 으로서는 절대로 진실(true)을 말 할 수도 없고 밝힐 수도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황 교수 사건에서, 기자회견 도중에 텔레비전 자막의 짧은 글들 - ‘줄기세포는 없다’ ‘황 교수가 논문조작을 시인’ - 기자들은 당장 황 교수의 말을 받아 적기에 급급했다. 그 파장은 엄청났다. 국민들은 그 짧은 글만으로 황 교수가 희대의 사기꾼인줄 알았다. 자랑스러웠던 우리나라가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의혹은 커져만 갔다. 그때, 황 교수의 기자회견을 충실히 지켜보고 진실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를 생각하고 진실을 찾아야겠다는 사명감이 언론사들에게 있었다면 그런 무지막지한 fact만으로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의혹을 갖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 후로도 언론은 계속해서 그런 식이었다. 작은 fact에 급급하여 진실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신중하게 차분하게 기다리며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국민들의 의혹을 풀어줄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국력 손실과 사회적 파장이 있었는가. 심지어 유력한 지식인들조차도 거기에 가담하여 진실을 왜곡까지 시켰다. 자기만의 논리대로 지식인들은 언론에서 떠들어 대었고, 언론은 가감 없이 그대로 방송을 했다. true은 논리로 설명되어질 성질이 아니다. 오로지 fact와 fact의 유기적 관계만으로 성립되어지는 것이다. 지식인들의 논리는 진실을 왜곡시키는 함정인 것이다. 거기에도 언론은 실수를 한 것이다.
언론은 처녀가 애를 낳았다는 fact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처녀가 왜 애를 낳았는지의 true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지식인들의 논리로 진실을 희석시키거나 왜곡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논리는 진실을 밝히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로지 fact와 fact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잘 연구하고 사건을 수직 수평으로 심층 해부해서 진실을 밝히는 것에만 모든 것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판단은 국민들이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fact 조차도 잘못 판단하여 방송을 하고, 그것 때문에 진실 조차도 호도되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손실과 의혹을 불러일으킨 한 언론사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그리고 그 언론사가 행한 범죄행위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놀아난 많은 지식인들에게도 다시 한번 진실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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