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전중권씨! 김용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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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시위하는 곳에 참석했다. 지난, 1월 14일 광화문에서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는 촛불 문화제였다. 나는 성격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집단행동을 하거나, 조직과 단체, 하여간 인위적으로 만들어 개인을 구속하는 형태들을 싫어하는 편이다. 게다가 나는 일본의 보수우익을 닮은 광적인 애국심에도 거부감을 느낀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천주교단의 논리대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공학적인 생명조작에 반대한다. 나는 자연을 숭배하는 샤마니즘을 믿는 사람이고 인류라는 큰 흐름도 자연의 일부로 여기고 인위적인 개발이나 문명에 반대하는 도가사상에 심취해 있기도 하다.
또한 나는 아나키스트이다. 갈수록 빈부의 격차를 만들어 놓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환경을 파괴시킬 수 밖에 없는 현재의 팽창하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자본주의와 국가주의를 부정하는 급진적인 진보론자인 것이다.
그래서 차선으로 택한 나의 정치정당이 민주노동당이다. 그렇다고 내가 민주노동당의 모든 것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한때, 열렬한 노사모였고 열우당 지지자였지만, 자본주의의 속에서 그들의 개혁과 분배주의와 복지정책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나의 정치관과 세계관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만족시킬 수 있는 정당이 민주노동당이라고 여기고 당원으로 가입을 하게 된 것이다.
강릉에서 조금 늦게 출발하여 광화문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벌써 와 있는 수많은 태극기를 보았다. 순간, 멈칫했었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치않은 나이기도 하고, 이 사람들 혹시 진중권씨 말대로 패닉에 빠진 맹목적인 애국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어서 진행자의 구호를 따라 외치는 아이 같은 군중들. 분위기를 잡는 유행가에 점점 하나가 되어 가는 사람들. 나도 어느새 그들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나 또한 나도 모르게 광신적이고 맹목적인 애국자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은 채 말이다.
내가 황우석 박사의 지지자가 된 것은, 황 박사의 두 차례에 걸친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그리고 황 박사 사건에 대해 유난히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또 하나 이야기 하자면, 소설의 소재를 찾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소설적 진정성에 빠져들기 위해 나는 진실을 찾아야 했다. 내 눈과 귀는 언론과 인터넷 사이트를 정신없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혼란스럽기만 했다. 보수적이고 신중한 언론은 침묵하기만 했고, 처음 이 논란을 일으킨 언론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편파적일 수 밖에 없었다. 간간히 터져 나오는 뉴스는 실체를 밝히는 것이 아니고 진실을 감추기 위해 드러난 답답한 포장지 같은 것 뿐이었다. 인터넷 포탈 사이트들은 때로는 검증되기도 하고 때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실들을 마구 풀어 놓았다. 어떤 사이트들은 황박사를 옹호했고 어떤 사이트들은 황박사를 매도했다. 네티즌들의 갑론을박도 치열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정확한 정황증거로 나름대로의 논리를 펼쳤고, 일부는 감정적이고 불확실한 언어로 상대를 무차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서울대 조사위를 믿고 싶었다. 아니, 처음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해서 나도 모르게 조사위의 말에 현혹되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뒤이어 밝혀진 조사위 보고서와 조사위원장의 발표와의 차이로 인해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다음날, 황박사의 기자회견을 보고 나는 황박사의 지지자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 내 소설을 위해서도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고, 그에 대한 내 나름의 가치를 찾고 싶었다.
내가 황박사의 기자회견에서 그의 지지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해답을 촛불 시위 현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침묵하고 있는 정부와 검찰과 일부 언론들이 국민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이해 할 수 있다고 해도, 그토록 많은 언론들이 황 박사를 매도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이 모여 있는 서울대 교수들조차도 사건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고, 내가 존경했던 독설가 김용옥씨와 진보논객 진중권씨조차 왜 황박사 사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생각했다. 왜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까지도 황박사 사건을 우려하며 눈물까지 흘린 것일까? 왜 윤리위원회에서는 더 큰 진실을 보지 못하고 황박사 연구의 난자 문제로 본질을 흐리는 것일까?
그런데, 그들이 무시하고 무식하다고 생각했던 일부 힘없는 국민들과, 버릇없다고 매도했던 네티즌들은 진실을 찾으려고 했고 찾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너무 성급하다고 할 것이다. 신중하고 보수적인 사람들이나 정부에서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좀더 사태를 주시하자고 할 것이다. 그런데, 검찰 수사도 초기 단계인 지금에도 사람들은 진실을 알았고, 나 또한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웃기지 않은가? 설득력이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과 최고의 지식인과 최고의 언론과 최고의 종교지도자 조차도 부정하는 것을, 검찰 수사를 기다리며 눈치를 보는 정부와 일부 언론조차도 말을 못하는 진실을, 사람들은 황우석 박사가 옳다고 진실을 찾았다고 성급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왜? 왜?
그 이유를 알았기에 나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것이다. 그 이유는, 황박사를 부정하는 과학자와 지식인과 언론들과 종교인들은, 그들의 틀 속에서 황박사 사건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형식 속에서 형식의 색안경을 쓰고 이 사건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최고의 가치라고 여겨왔던 과학적 사고와 논리적 설명과 종교적 가치관이 그들이 진실을 바르게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과정은 일반 국민들이 절대로 알 수가 없고 이해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지식인들의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고는 일반 사람들은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다. 고매한 종교 철학 또한 두려울 정도로 고매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가치과 지식과 철학을 모르기에, 그런 가치가 설사 자신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그래서 답답하기에 그들 보다 진실에 쉽게 다가갈 수도 있고, 그들처럼 눈치를 보지 않고 진실을 말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솔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가두어야 할 어떤 논리도 가치도 철학에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이 혹시 숨기고 있을 지도 모르는 어떤 이해타산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로지 진실을 찾기 위해 스스로 모임을 만들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집회에 찾아 왔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실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고, 어떤 구속에도 자유로울 수 있는 민주 시민의 자세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매하고 성급한 사람들을 믿고 촛불 시위현장에 강릉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간 것이다.
무대위에 오십대 아주머니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장바구니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첫 번째 시위 때 왔다가, 남편이 다시는 시위현장에 가지 말라고 해서, 시장에 간다고 거짓말 시키고 왔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집안에서 살림만 삼십년 해왔다. 세상 물정도 잘 모른다. 정치가 뭔지 과학이 뭔지 종교철학이 뭔지도 모른다. 오로지 자식 키우고 남편 공경하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무식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매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에 그 아주머니에게는 유식한 과학자나 지식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그 아주머니가 살아 온 가치의 전부 일 것이다. 그것은 마음이다. 사람이다. 마음이야 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할 수 있는 최상의 가치인 것이다. 그것은 진실되고 치열하게 살아 온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합리적 논리와 과학적 이론과 종교적 철학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람의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어쩌면 그러한 것들이 우리들의 눈을 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진실을 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법이라는 틀 속에서 진실을 가리는 방법이 있을 터이고, 합리적 논리로 밝히는 것도 있을 터이고 종교적 가치관으로 저울질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방법들로 인해 진실을 찾아가다가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했는가.
그러나 유사 이래로 한번도 오류를 범하지 않고 진실을 찾고자 한 것이 있다. 그것은 민중들의 소리였다. 민초들의 투박하고 거친 함성이었다. 우리 평범한 어머니와 아버지와 아내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어머니들의 한숨 소리였다.
그 아주머니는 황 박사의 기자회견 모습을 보고 진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 아주머니는 무식해서 과학이 뭔지 종교 철학이 뭔지 가치가 뭔지 몰랐을 것이다. 그 광경을, 어떤 사심도 없이 주의 깊게 지켜 본 사람이라면, 황 박사의 말소리와 표정에서 느닷없이 진실이 다가 옴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진실을 아는 가장 큰 열쇠는 직관력이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직관력이 혼자만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같이 느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유사 이래로 무식한 민초들이 얼마나 많은 진실을 부르짓었는가. 물론 그것이 전부 직관력 하나만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들의 막혀 있는 정보수집 능력으로 보아서는 직관력의 힘이 컸다고 생각되어진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황박사가 진실이라는 여러 가지 정황증거가 너무나 명백하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내가 태극기를 흔들고 싶어, 애국자이기 때문에 간 것이 아니다. 이념이나 사상이나 정치적 철학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곳의 사람들도 나처럼 어떤 이념이나 사상이나 정치적 철학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마 자세히 물어 본 다면, 그런 것들이 전부 틀린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진실을 알기 때문에, 진실을 찾고 싶어 간 것이다. 민초들의 진실의 투박한 함성을 현장에서 느끼고 싶어 간 것이다.
진중권씨!!
나는 그 동안 진보논객으로서 당신을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당신이 잘못 짚은 것 같습니다. 그들의 태극기는, 패닉에 빠진 맹목적인 애국심의 발로가 아니고, 태극기는 그들이 하나라는 것을 의미하는 하나의 도구였을 뿐입니다. 게다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당신은 잘 알지 않습니까? 그날 모인 사람들은 다만 힘 있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어쩌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진실을 찾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힘 있는 자들이 역사를 만들었고 그래서 국가를 만들었고, 그들에 의해 힘없는 사람들이 국가라는 틀 속으로 쇄뇌되어 진 것을 당신은 잘 알지 않습니까?
김용옥씨!!!
나는 당신의 역사관, 특히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대한 해석을 감명 깊게 본 사람입니다. 당신의 천재적인 머리에 감탄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해석한 동학혁명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동학혁명은 누구의 함성이었습니까? 당신 말대로 우매한 민초들의 함성이었습니다. 당신은 알고 있을 겁니다. 지금껏 민초들의 함성은 한번도 진실을 찾기에 오류를 범하지 않았고 그리고 진실이었다는 것을. 지금 황우석 박사에 대해 사람들이 울분을 토하는 것이 바로 민초들의 함성입니다. 머리 좋은 김용옥씨! 당신은 먼 곳은 잘 보지만, 가까운 곳은 잘 보지 못합니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역사는 현실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현재를 똑 바로 알아야 과거와 미래도 바르게 알 수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이런 글을 쓰니, 경직이 되는 군요. 이제 이완을 시켜야겠어요. 나의 심신을 풀어헤치고 여유를 가지렵니다. 그래야 이 사건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소설을 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집회를 마치고 동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서, 11시 반 마지막 심야버스 표를 끊어 놓고,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병을 까고 술이 취해 좌석에 누웠더니, 벌써 강릉이더군요.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천주교단의 논리대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공학적인 생명조작에 반대한다. 나는 자연을 숭배하는 샤마니즘을 믿는 사람이고 인류라는 큰 흐름도 자연의 일부로 여기고 인위적인 개발이나 문명에 반대하는 도가사상에 심취해 있기도 하다.
또한 나는 아나키스트이다. 갈수록 빈부의 격차를 만들어 놓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환경을 파괴시킬 수 밖에 없는 현재의 팽창하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자본주의와 국가주의를 부정하는 급진적인 진보론자인 것이다.
그래서 차선으로 택한 나의 정치정당이 민주노동당이다. 그렇다고 내가 민주노동당의 모든 것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한때, 열렬한 노사모였고 열우당 지지자였지만, 자본주의의 속에서 그들의 개혁과 분배주의와 복지정책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나의 정치관과 세계관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만족시킬 수 있는 정당이 민주노동당이라고 여기고 당원으로 가입을 하게 된 것이다.
강릉에서 조금 늦게 출발하여 광화문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벌써 와 있는 수많은 태극기를 보았다. 순간, 멈칫했었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치않은 나이기도 하고, 이 사람들 혹시 진중권씨 말대로 패닉에 빠진 맹목적인 애국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어서 진행자의 구호를 따라 외치는 아이 같은 군중들. 분위기를 잡는 유행가에 점점 하나가 되어 가는 사람들. 나도 어느새 그들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나 또한 나도 모르게 광신적이고 맹목적인 애국자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은 채 말이다.
내가 황우석 박사의 지지자가 된 것은, 황 박사의 두 차례에 걸친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그리고 황 박사 사건에 대해 유난히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또 하나 이야기 하자면, 소설의 소재를 찾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소설적 진정성에 빠져들기 위해 나는 진실을 찾아야 했다. 내 눈과 귀는 언론과 인터넷 사이트를 정신없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혼란스럽기만 했다. 보수적이고 신중한 언론은 침묵하기만 했고, 처음 이 논란을 일으킨 언론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편파적일 수 밖에 없었다. 간간히 터져 나오는 뉴스는 실체를 밝히는 것이 아니고 진실을 감추기 위해 드러난 답답한 포장지 같은 것 뿐이었다. 인터넷 포탈 사이트들은 때로는 검증되기도 하고 때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실들을 마구 풀어 놓았다. 어떤 사이트들은 황박사를 옹호했고 어떤 사이트들은 황박사를 매도했다. 네티즌들의 갑론을박도 치열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정확한 정황증거로 나름대로의 논리를 펼쳤고, 일부는 감정적이고 불확실한 언어로 상대를 무차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서울대 조사위를 믿고 싶었다. 아니, 처음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해서 나도 모르게 조사위의 말에 현혹되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뒤이어 밝혀진 조사위 보고서와 조사위원장의 발표와의 차이로 인해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다음날, 황박사의 기자회견을 보고 나는 황박사의 지지자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 내 소설을 위해서도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고, 그에 대한 내 나름의 가치를 찾고 싶었다.
내가 황박사의 기자회견에서 그의 지지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해답을 촛불 시위 현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침묵하고 있는 정부와 검찰과 일부 언론들이 국민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이해 할 수 있다고 해도, 그토록 많은 언론들이 황 박사를 매도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이 모여 있는 서울대 교수들조차도 사건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고, 내가 존경했던 독설가 김용옥씨와 진보논객 진중권씨조차 왜 황박사 사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생각했다. 왜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까지도 황박사 사건을 우려하며 눈물까지 흘린 것일까? 왜 윤리위원회에서는 더 큰 진실을 보지 못하고 황박사 연구의 난자 문제로 본질을 흐리는 것일까?
그런데, 그들이 무시하고 무식하다고 생각했던 일부 힘없는 국민들과, 버릇없다고 매도했던 네티즌들은 진실을 찾으려고 했고 찾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너무 성급하다고 할 것이다. 신중하고 보수적인 사람들이나 정부에서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좀더 사태를 주시하자고 할 것이다. 그런데, 검찰 수사도 초기 단계인 지금에도 사람들은 진실을 알았고, 나 또한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웃기지 않은가? 설득력이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과 최고의 지식인과 최고의 언론과 최고의 종교지도자 조차도 부정하는 것을, 검찰 수사를 기다리며 눈치를 보는 정부와 일부 언론조차도 말을 못하는 진실을, 사람들은 황우석 박사가 옳다고 진실을 찾았다고 성급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왜? 왜?
그 이유를 알았기에 나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것이다. 그 이유는, 황박사를 부정하는 과학자와 지식인과 언론들과 종교인들은, 그들의 틀 속에서 황박사 사건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형식 속에서 형식의 색안경을 쓰고 이 사건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최고의 가치라고 여겨왔던 과학적 사고와 논리적 설명과 종교적 가치관이 그들이 진실을 바르게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과정은 일반 국민들이 절대로 알 수가 없고 이해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지식인들의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고는 일반 사람들은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다. 고매한 종교 철학 또한 두려울 정도로 고매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가치과 지식과 철학을 모르기에, 그런 가치가 설사 자신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그래서 답답하기에 그들 보다 진실에 쉽게 다가갈 수도 있고, 그들처럼 눈치를 보지 않고 진실을 말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솔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가두어야 할 어떤 논리도 가치도 철학에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이 혹시 숨기고 있을 지도 모르는 어떤 이해타산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로지 진실을 찾기 위해 스스로 모임을 만들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집회에 찾아 왔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실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고, 어떤 구속에도 자유로울 수 있는 민주 시민의 자세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매하고 성급한 사람들을 믿고 촛불 시위현장에 강릉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간 것이다.
무대위에 오십대 아주머니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장바구니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첫 번째 시위 때 왔다가, 남편이 다시는 시위현장에 가지 말라고 해서, 시장에 간다고 거짓말 시키고 왔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집안에서 살림만 삼십년 해왔다. 세상 물정도 잘 모른다. 정치가 뭔지 과학이 뭔지 종교철학이 뭔지도 모른다. 오로지 자식 키우고 남편 공경하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무식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매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에 그 아주머니에게는 유식한 과학자나 지식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그 아주머니가 살아 온 가치의 전부 일 것이다. 그것은 마음이다. 사람이다. 마음이야 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할 수 있는 최상의 가치인 것이다. 그것은 진실되고 치열하게 살아 온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합리적 논리와 과학적 이론과 종교적 철학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람의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어쩌면 그러한 것들이 우리들의 눈을 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진실을 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법이라는 틀 속에서 진실을 가리는 방법이 있을 터이고, 합리적 논리로 밝히는 것도 있을 터이고 종교적 가치관으로 저울질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방법들로 인해 진실을 찾아가다가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했는가.
그러나 유사 이래로 한번도 오류를 범하지 않고 진실을 찾고자 한 것이 있다. 그것은 민중들의 소리였다. 민초들의 투박하고 거친 함성이었다. 우리 평범한 어머니와 아버지와 아내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어머니들의 한숨 소리였다.
그 아주머니는 황 박사의 기자회견 모습을 보고 진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 아주머니는 무식해서 과학이 뭔지 종교 철학이 뭔지 가치가 뭔지 몰랐을 것이다. 그 광경을, 어떤 사심도 없이 주의 깊게 지켜 본 사람이라면, 황 박사의 말소리와 표정에서 느닷없이 진실이 다가 옴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진실을 아는 가장 큰 열쇠는 직관력이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직관력이 혼자만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같이 느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유사 이래로 무식한 민초들이 얼마나 많은 진실을 부르짓었는가. 물론 그것이 전부 직관력 하나만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들의 막혀 있는 정보수집 능력으로 보아서는 직관력의 힘이 컸다고 생각되어진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황박사가 진실이라는 여러 가지 정황증거가 너무나 명백하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내가 태극기를 흔들고 싶어, 애국자이기 때문에 간 것이 아니다. 이념이나 사상이나 정치적 철학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곳의 사람들도 나처럼 어떤 이념이나 사상이나 정치적 철학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마 자세히 물어 본 다면, 그런 것들이 전부 틀린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진실을 알기 때문에, 진실을 찾고 싶어 간 것이다. 민초들의 진실의 투박한 함성을 현장에서 느끼고 싶어 간 것이다.
진중권씨!!
나는 그 동안 진보논객으로서 당신을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당신이 잘못 짚은 것 같습니다. 그들의 태극기는, 패닉에 빠진 맹목적인 애국심의 발로가 아니고, 태극기는 그들이 하나라는 것을 의미하는 하나의 도구였을 뿐입니다. 게다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당신은 잘 알지 않습니까? 그날 모인 사람들은 다만 힘 있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어쩌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진실을 찾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힘 있는 자들이 역사를 만들었고 그래서 국가를 만들었고, 그들에 의해 힘없는 사람들이 국가라는 틀 속으로 쇄뇌되어 진 것을 당신은 잘 알지 않습니까?
김용옥씨!!!
나는 당신의 역사관, 특히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대한 해석을 감명 깊게 본 사람입니다. 당신의 천재적인 머리에 감탄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해석한 동학혁명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동학혁명은 누구의 함성이었습니까? 당신 말대로 우매한 민초들의 함성이었습니다. 당신은 알고 있을 겁니다. 지금껏 민초들의 함성은 한번도 진실을 찾기에 오류를 범하지 않았고 그리고 진실이었다는 것을. 지금 황우석 박사에 대해 사람들이 울분을 토하는 것이 바로 민초들의 함성입니다. 머리 좋은 김용옥씨! 당신은 먼 곳은 잘 보지만, 가까운 곳은 잘 보지 못합니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역사는 현실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현재를 똑 바로 알아야 과거와 미래도 바르게 알 수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이런 글을 쓰니, 경직이 되는 군요. 이제 이완을 시켜야겠어요. 나의 심신을 풀어헤치고 여유를 가지렵니다. 그래야 이 사건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소설을 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집회를 마치고 동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서, 11시 반 마지막 심야버스 표를 끊어 놓고,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병을 까고 술이 취해 좌석에 누웠더니, 벌써 강릉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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