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장섭이와의 추억을 회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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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우리 동기들 모두 가슴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었다.
장섭이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한동안 망연자실 넋을 잃고 필식이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보다가
설마설마 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전화를 걸어 다시 확인하고는
요 며칠간의 간절한 기도도 헛되고 말았구나 하는 허탈함과 함께
왜 이리도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가야 하는 원망이 밀려 들었다.
나쁜 자식...나도 모르게 화가 나 허공에 대고 욕을 했단다.
눈물이 그렁그렁 앞을 가리는 가운데 너와의 크고 작은 일들과
늘 생글생글 미소지으면서 나즈막한 목소리로 싱거운 농을 해대던
네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단다.
안그래도 네가 사경을 해맨다던 요며칠 부쩍 네 생각이 많이 났었다.
여의도에서 목동으로 회사를 이전하면서 바로 너와의 추억이 깃든
망원동 우리가 자취하던 봉길이네 집근처를 늘 지나게 되었거든.
1987년 늦은 가을..막 사회 초년병이던 대한항공의 장섭이와 교보생명의
권기록, 그리고 한국능률협회 다니던 나...이렇게 셋이서 망원동 봉길이네
그 집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하지 않았었니??
그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그 집 앞 강변북로로 출퇴근을 하면서 어서 일어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라고 그렇게도 간절이 기도를
했건만...
그리고 지난 주는 네가 처음으로 중국 생활을 시작했다던 그 상해 푸동공항을
거쳐 귀국을 하면서 다시 또 간절히 네 쾌유를 빌었었는데...
지금 자정을 막 넘긴 이 시간 우리 곁을 떠난 너를 잊을 수 없어 엄청난 비가
내리고 있고, 수많은 친구들이 슬픔에 불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지난 수년간은 서로 격동의
시간들을 보냈는데, 내일 너를 조문하기 위해 가야한다는 기막힌 현실에 그저
어이가 없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나쁜 자식아.
우리 아버지 마흔아홉에 여의고 그 우울한 슬픔의 기억들이 내 삶속에서 어두운
그늘이 되어 있었는데, 너는 그 보다도 젊은 마흔여덟에 누구 가슴에 크나 큰
상심과 우울을 주려고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났노...이 자식아.
이제는 들을 수도 없는 네 목소리며, 그 생글생글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생전의
그 인자한 미소도 그저 영정 속에서만 봐야 옳겠느냐???
지금 솔직한 심정은 네 떠남을 인정할 수도 없고, 그저 편히 잠들라 빌 수도 없단다.
아직 나는 그 망원동 시절의 몸만들기에 애쓰던 몸짱 장섭이 기억밖에 없단다.
망원동 자취시절 이후로 하나 둘 결혼하면서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신혼 초 친구들 계모임으로 정선 등지에서 가족들이 만나 밤새 놀 때나 혹은
네가 중국에서 오랜 세월을 보낼 때도,그리고 풍문에 제주도에서 근무한다더라
들을 때도 너는 늘 우리에게 그 변치않을 미소로 머리 속에 남아 있었는데...
장섭아 이렇게 비록 몸은 우리 곁을 떠나 다시 볼 수 없지만, 이젠 너 우리에게
그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 속 그 모습만이라도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있어다오.
몹쓸 장섭아...내일 너로인한 오랜만의 강릉길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사경을 넘나들던 그 위중한 시간에 문병 한번 못한 아쉬움에 눈물이 쏟아진다.
으.....이 기막힌 상황에 도무지 도무지 할 말이 없대이...장섭아 장섭아
장섭이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한동안 망연자실 넋을 잃고 필식이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보다가
설마설마 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전화를 걸어 다시 확인하고는
요 며칠간의 간절한 기도도 헛되고 말았구나 하는 허탈함과 함께
왜 이리도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가야 하는 원망이 밀려 들었다.
나쁜 자식...나도 모르게 화가 나 허공에 대고 욕을 했단다.
눈물이 그렁그렁 앞을 가리는 가운데 너와의 크고 작은 일들과
늘 생글생글 미소지으면서 나즈막한 목소리로 싱거운 농을 해대던
네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단다.
안그래도 네가 사경을 해맨다던 요며칠 부쩍 네 생각이 많이 났었다.
여의도에서 목동으로 회사를 이전하면서 바로 너와의 추억이 깃든
망원동 우리가 자취하던 봉길이네 집근처를 늘 지나게 되었거든.
1987년 늦은 가을..막 사회 초년병이던 대한항공의 장섭이와 교보생명의
권기록, 그리고 한국능률협회 다니던 나...이렇게 셋이서 망원동 봉길이네
그 집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하지 않았었니??
그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그 집 앞 강변북로로 출퇴근을 하면서 어서 일어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라고 그렇게도 간절이 기도를
했건만...
그리고 지난 주는 네가 처음으로 중국 생활을 시작했다던 그 상해 푸동공항을
거쳐 귀국을 하면서 다시 또 간절히 네 쾌유를 빌었었는데...
지금 자정을 막 넘긴 이 시간 우리 곁을 떠난 너를 잊을 수 없어 엄청난 비가
내리고 있고, 수많은 친구들이 슬픔에 불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지난 수년간은 서로 격동의
시간들을 보냈는데, 내일 너를 조문하기 위해 가야한다는 기막힌 현실에 그저
어이가 없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나쁜 자식아.
우리 아버지 마흔아홉에 여의고 그 우울한 슬픔의 기억들이 내 삶속에서 어두운
그늘이 되어 있었는데, 너는 그 보다도 젊은 마흔여덟에 누구 가슴에 크나 큰
상심과 우울을 주려고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났노...이 자식아.
이제는 들을 수도 없는 네 목소리며, 그 생글생글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생전의
그 인자한 미소도 그저 영정 속에서만 봐야 옳겠느냐???
지금 솔직한 심정은 네 떠남을 인정할 수도 없고, 그저 편히 잠들라 빌 수도 없단다.
아직 나는 그 망원동 시절의 몸만들기에 애쓰던 몸짱 장섭이 기억밖에 없단다.
망원동 자취시절 이후로 하나 둘 결혼하면서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신혼 초 친구들 계모임으로 정선 등지에서 가족들이 만나 밤새 놀 때나 혹은
네가 중국에서 오랜 세월을 보낼 때도,그리고 풍문에 제주도에서 근무한다더라
들을 때도 너는 늘 우리에게 그 변치않을 미소로 머리 속에 남아 있었는데...
장섭아 이렇게 비록 몸은 우리 곁을 떠나 다시 볼 수 없지만, 이젠 너 우리에게
그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 속 그 모습만이라도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있어다오.
몹쓸 장섭아...내일 너로인한 오랜만의 강릉길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사경을 넘나들던 그 위중한 시간에 문병 한번 못한 아쉬움에 눈물이 쏟아진다.
으.....이 기막힌 상황에 도무지 도무지 할 말이 없대이...장섭아 장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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