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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 동기회

자유게시판 고구려유적지 및 백두산 기행문(4박5일중 1-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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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돈시
댓글 0건 조회 638회 작성일 13-08-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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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13일(금)~17일(월) 4박5일 /
인천국제공항 <-> 중국다롄(大連)국제공항

* 제 1일차 :
2013년 6월13일 오전 9:40분에 인천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10분여만에 중국 다롄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번 여행은 4박5일 동안 백두산과 민족의 영토 고구려 유적지 답사를 위해 대한민국 ROTC15기 산악회 회원 부부 37명이 회갑기념으로 단체로 여행을 하는 뜻 깊은 문화기행이었습니다.

전체 여행 코스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다렌공항 도착 –(4H)- 단둥 - 압록강 유역-(2.5H)- 환런 –(2H)- 퉁화 –(4H)- 백두산 –(4H)- 퉁화 –(1.5H)- 지안 –(4.5)- 단둥 –(4.5)- 다롄 -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27시간 정도를 버스로 이동하는 비교적 강행군의 여행길이 되었습니다.

1-1. 성해광장(星海廣場) :
중국 랴오닝성 (遼寧省) 랴오둥(遼東) 반도 남단에 위치한 다롄(大連) 공항에 도착하자 현지 가이드가 우리를 여행 전용 버스로 안내 하였는데, 부모가 북한 출신인 26세의 청년으로 인사 말부터 유머를 섞어가며 잘 해서 첫인상이 매우 좋았습니다. 점심식사 후에 처음 도착한 곳이 성해광장(星海廣場)인데 다롄시 100주년 기념으로 만든 아시아 최대규모 176만제곱미터인 넓은 광장으로 중앙에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중국의 기상을 표현하는 조각품들이 설치되어 있고 1세 아이부터 100세 노인까지 발자국 100쌍을 새긴 80m의 상징적인 길도 설치해 놓았습니다. 청일전쟁 후에는 러시아가 해안가를 빌려서 항만을 건설하였고, 또 러일전쟁 후에는 일본이 50여년 동안 자유항으로 만들어서 만주공략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으로 동북지구의 중요한 공업지대와 항구도시로 발전되어 와서 최근에는 마천루 같은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고, 특히 부자들이 많아지고, 영화배우 유덕화의 큰 별장이 현재 리모델링 중이었는데 그 옆에 있는 호텔보다도 규모가 커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1-2. 라오후탄 해상공원의 호랑이상 :
두번째 찾아간 곳은 숙소인 단둥 (丹东)으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잠시 라오후탄(老虎灘) 공원에 있는 아시아에서 제일 큰 호랑이 돌조각상 이었습니다만 규모는 클지 모르지만 예술적 가치는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버스로 4시간 동안 단둥으로 이동하는 동안 차창으로 보이는 북중 접경의 압록강 건너 북한 쪽 내륙유역의 북한 땅과 아직 정확한 위치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태조 이성계가 회군 하였다는 위화도가 바로 눈 앞에 펼쳐지니 감회가 새로 왔습니다.

2일차 :
2-1. 단둥 압록강 철교 :
중국 단둥과 북한 두 나라의 경계를 이루는 총길이 795km의 압록강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지린(吉林) 랴오닝(遼寧) 두 개의 성을 거쳐 흘러와 단둥에 이르러 강과 바다가 나뉘는 곳에서 황해로 흘러들어 갑니다.
도로 서쪽 시내 방향에는 두꺼운 철판으로 만들어진 수방벽(水防壁)이 설치되어 있는데 2010년 8월에 3일간 쏟아진 폭우로 단둥시와 신의주시가 완전 침수된 대재앙 이후에 강의 범람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큰 비가 다시 내린다면 이 수방벽 때문에 단둥시는 안전 할 지 몰라도 북한 신의주가 큰 물난리를 당할 것 같아서 내심 얄미운 방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에 해당하는 압록강 공원 표지석에는 “신기압록강(神奇鴨綠江) 여유호지방(旅遊好地方)” 즉 신비롭고 기이한 압록강은 좋은 관광지라고 홍보문구가 새겨있고, 아침 저녁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 공원에 나와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 어디를 가던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음악을 틀어 놓고 태극권이나 기공체조를 즐기는 주민들을 보면서 국내총생산 대비 1인당 의료보험비 지출액이 가장 적은 반면에 대도시 평균수명이 80세에 이른다는 점은 기업내의 단체 체조나 이러한 생활 속에서 즐기는 사교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교통 요충지로 복합형 철교가 있는데 북한 쪽 다리 끝단에는 “조중우의교”중국 쪽에는 “중조우의교”라는 팻말이 있습니다.
중국내륙의 많은 물자가 이 철교를 통해 북한 땅으로 들어가고 철교 좌우측에는 자동차 도로가 붙어 있어서 사람들이 왕래 하는데 이 시기는 김정은 정권과 소원해진 북중관계 만큼이나 도로는 한산한 모습이었습니다.

2-2. 압록강 조중접경 유람선 :
압록강 북쪽 유역에 있는 유람선 선착장을 향해 달리는 차장너머로 북한 쪽의 벌거숭이 산이 중국 쪽과 매우 대비되었습니다 . 산비탈 정상까지 개간을 해서 옥수수 같은 밭 작물을 심어 놓은 것을 볼 수 있고 군데 군데 북한 초소가 있어서 중국 쪽으로 도강을 하는 탈북자를 감시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습니다.

유람선에 승선하여 북쪽 주민들과 50여미터 가까이서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도 하며 유람을 하는데도 즐거운 마음 보다는 모두 이구동성으로 지도자를 잘못 만나 고생하는 불쌍한 북쪽 주민들이 의식주도 제대로 해결 못하고 있는 북한체제에 대한 성토 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이곳에도 6.25 때 미군 폭격으로 끊어진 비극의 단교가 있는데 중국에서는 잇기를 원했지만 북쪽에서 원하지 않아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고 합니다. 끊어진 다리 북쪽 끝 단에는 북측의 초소가 다리 상판 위에 있었습니다. 교각 곳곳에는 아직도 총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역사의 비극은 DMZ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도 그대로 남아 있구나 싶어서 씁쓸하고 찹찹한 심정이었습니다.


2-3. 환런(桓仁)의 오녀산성 :
압록강 접경을 벗어나 버스는 2시간반 가량 달려서 고구려 유적지 첫 탐방지인 환런에 도착했습니다. 환런은 고구려 첫 번째 수도인 졸본성이 있는 곳인데 유적지를 보기 전에 여기서 점심을 했습니다. 중국 현지 식사라고 해도 고유의 향료들을 줄여서 거의 한국식으로 변형 한 메뉴라 큰 불편이 없이 모두가 잘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시조 추모왕(鄒牟王)께서 처음으로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 비류곡 홀본 서쪽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웠다”
고구려인들이 직접 세운 광개토태왕비에 새겨진 가장 오래된 (서기414년) 금석문에 따를 때 오늘날 오녀산성이라고 부르는 곳이 첫 도읍지 졸본성입니다. 기원전 30년부터 기원3년 주몽의 아들 유리왕이 도읍을 국내성으로 이전할 때까지 40년 동안 고구려 수도로 남아 있던 곳입니다. 오녀산성 입구에는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졸본토기를 비롯한 2000여점의 유물들을 전시하는 오녀산성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을 둘러보는 동안 관리인이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박물관을 나오면 삼족오가 새겨진 고구려시조비를 만나게 되고, 바로 옆에는 산성을 왕래하는 셔틀버스 20여대가 있는 주차장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단체 사진 촬영 후에 버스를 타고 10여분 비탈길을 오르면 해발 600m에 오녀산성비가 세워진 서문 입구에 이릅니다. 이곳에서부터는 가파른 인공 돌계단 999개를 걸어서 오녀산성 서문에 오를 수 있는데 이전에는18굽이길 이었는데 관광객을 위해 돌계단을 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산세가 험준한 해발 820m 남북 600m 동서 200m의 넓이의 천혜의 요새인 오녀산성은 서쪽과 남쪽은 수직절벽이고 비교적 덜 험준한 동쪽에는 마로와 관측이 가능한 장대와 성 아래에는 2천여년 세월을 버텨온 성벽이 있습니다. 아직도 곳곳에 전망대, 6칸짜리 건물의 왕궁터, 병영터, 산 꼭대기에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우물 천지 등을 볼 수 있고, 동남쪽 벼랑 위의 점장대에 이르면 넓은 시계 멀리 굽이처 흐르는 황용호가 보입니다.
이 호수가 주몽이 건너왔다는 비류수로 추정되는데 환런댐 상류로 바뀌었고 오늘날 혼강이라 부르는 이곳을 아련히 내려다 보니 비류수 염난수 동가강 등으로 역사 속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려졌던 이 강물만이 당시의 주몽왕의 건국 역사와 자취, 그의 아들 유리왕의 황조가와 서소노와의 사랑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겠다 싶어 깊은 감회에 빠졌습니다.

더구나 우리 역사 유적을 중국 정부가 자기들 것으로 만들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 후손인 우리에게 장사를 하고 있다는 아이러니에 뭉클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는데 한 친구의 선창으로 우리 모두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토록 …” 애국가를 힘차게 합창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정부에서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통하여 2004년 이미 이 유적들을 모두 UNESCO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습니다. 그 규모는 고구려 초기의 세 수도(오녀산성, 국내성, 환도산성)와 광개토태왕비, 왕릉 13기와 딸린 무덤 1기, 그리고 귀족무덤 26기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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