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고한마당

강릉고등학교 총동문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09회 동기회

자유게시판 지리산 종주 산행기(권순기, 오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박종길
댓글 0건 조회 499회 작성일 10-08-03 10:51

본문

< 지리산 종주 2박3일 >

*산 행 지 : 성삼재~노고단~천왕봉(1915m)
*산행일자 : 2010. 6.21(월)~6.23(수)
*누 구 랑 : 친구 오철과 함께..
*날 씨 : 맑음

<산행코스> -- 총 36.5km

*1일차(6/21월) : 성삼재-노고단고개-임걸령-노루목-삼도봉-화개재-토끼봉-명선봉 -연하천-삼각봉-형제봉-벽소령 / 16.8km

*2일차(6/22화) : 벽소령-선비샘-칠선봉-영신봉-세석-촛대봉-연하봉-장터목 / 9.7km

*3일차(6/23수) : 장터목-제석봉-통천문-천왕봉-장터목-백무동 / 10.0km


<지리산 종주 산행기>

지리산 종주!

백두대간의 마지막 자락을 밟는 일..
좀처럼 쉽게 時空이 許하는 일이 아니다.

일상에 묶여있는 우리의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쉽지 않은 시간인연이다..


혹여 지리종주 계획을 꾸미려 해도
자기 편한대로 일정을 잡기도 여의치 않은 게 지리종주의 실상이다.

아무에게나 쉬이 許하는 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15일전에 해야하는 대피소(숙소) 예약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15일 이후의 일기예측도 불명한 상황이라 기대하는 종주 계획은 처음부터 행운이 함께하지 않으면 산행 아닌 고행이 되기도 한다.

어머니의 산.. 지리산!

깊은 성찰을 가져다주는 산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오르고 싶어하는 산이며, 복을 지은 자에게만 행운을 준다는 산이다.

지리종주를 무난히 마무리하기란 정말로 복된 자에게만 돌아오는 행운이다. 더욱 천왕봉 일출은 3대로 이어진 복이 있어야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지리(智異)! 남다른 지혜를 배우려 해서인지.. 복은 일단 차치해 두고..
대부분 사람들에게 지리종주는 큰마음 하나로.. 또 쉽지 않게 틈내 놓은 그 시간만으로 지리종주에 나선다.

그런 지리산을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인연이 온 것이다..

친구는 지난해 회사를 그만 두고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친구에게는 이즈음 휴식은 필요한 활력소가 될 것이며, 또한 휴식 할 충분한 자격도 있다고 본다.
산행! 산으로의 걸음.. 삶의 여정과 함께 무언가 쉬어감의 의미가 거기에 있을 성 싶어, 친구는 벌써부터 지리종주에야 마음을 내고 있었다..

지난 달, 유럽여행을 다녀와서 이번엔 바로 지리종주에 나서자고 하여, 장마와 방학이 오기 전으로 하여 서둘러 일정을 잡았다.

일찍이 직장을 그만 둔 나는 산사(山寺)와의 인연과 건강을 위한 산행으로 자주 산행을 다니고 있었지만, 친구는 초보(?)에다 근년엔 병치례로 몸도 마음과 같이 여의하게 따라주지 못한 상황이라.. 지리종주에 대한 일은 모두 내 몫이다.

일단 배낭은 가능한 최대로 줄이기로 한다. 우선 식단에서 간단한 국거리, 찌개거리만 준비하고, 햇반과 라면은 대피소에서 조달하기로 하고 제외한다. 첫날 아침도 구례에서 약식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6월21일(월), 계획된 일정대로 2박3일의 지리종주 길에 올랐다.

용산역에서 6월20일(일) 22시50분에 출발하는 여수행 무궁화호 열차다. 기억도 아득한 야간열차.. 선잠깨며 새벽 03시23분에 도착한 구례구역엔 성삼재행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오직 종주 산꾼들을 위한 버스다. 통로까지 꽉 채운 버스는 구례버스터미널에서 잠시 머문다. 제 시간인 새벽 04시에 출발하여 화엄사를 경유, 밤길을 달려 40여분만에 성삼재(1102m)에 오른다.

04시40분, 아직 어둠이 걷히지는 않았지만 옅은 여명이 밝아오며 렌턴 없이 산길을 잡는다. 잠 못 이룬 걸음같지 않게 경쾌하다.. 첫날 날씨 예감이 매우 좋은 느낌이라 기운도 난다.

워밍업으로 오른 노고단대피소에서 구례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아침을 쉽게 해결하고 다른 종주팀들에 비해 일찍 발길을 옮긴다. 첫날, 벽소령까지 16.8km의 다소 긴 일정을 무리하지 않고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06시10분, 지리종주의 시발점인 노고단고개엔 붉은 햇살이 산록에 어우러 내린다. 노고단 새벽은 맑고도 맑다. 근데 복덕이 부족한 탓인지.. 날씨 복에 따른 시샘인지.. 지리산 10경중, 제2경인 노고운해(老姑雲海)의 선경은 보여주지 않는다. 운해 없는 산자락들만 펼쳐져 있다.

노고단(1507m)은 일정 탐방객에게만 허용되고 있어 조망으로 눈도장을 찍는다. 노고단고개 돌탑을 배경으로 기념을 남기고 종주의 첫발을 옮긴다.. 원만한 능선길을 줄여 나가다가 돼지령에서 그나마 지리산 구름바다의 일면은 맛보기로 볼 수 있었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산가족이라 한다.. 임걸령과 화개재에서 만나 어울린 두 사람은 숙소도 우리와 같아 종주길 내내 함께 했다. 경찰관인 예쁜 대구 아가씨와 중견회사의 김 부장님.. 두 사람 모두 홀로 종주길에 오른 멋진 산님들이다.

07시50분, 임걸령(1320m)에서 노고단을 돌아본다. 노고단 돌탑과 노고단고개가 뚜렷이 다가온다. 임걸령샘의 물맛이 청량하기 그지없고, 그 물로 양치를 하고나니 온몸이 개운해 진다.

반야봉과 노고단을 앞뒤로 조망해 가는 길을 이어간다.

08시40분, 아직은 편한 발검음으로 반야봉 갈림길인 노루목(1500m)까지 왔다. 노고단 후경이 산록능선으로 푸르게 넘실대며 맑은 하늘 아래 시원하다.

후덕한 모양으로 지리주능에서 약간 비켜선 반야봉(1734).. 지리(智異)의 남다른 지혜는 이 반야봉의 반야지혜(般若智慧)에서 왔는지 모를 일이다..
체력안배 차원에서 반야봉은 다음기회로 남기고 자리를 뜬다.

20여분만에 삼도봉(1490m)에 오니 많은 산님들이 모여 있다. 경남, 전북, 전남.. 삼도의 경계가 되는 곳.. 작은 삼각뿔황동탑 삼면에는 삼도명이 새겨져 있고, 둥근 받침면 둘레에는 “三道를 낳은 봉우리에서 전북, 경남, 전남 도민이 서로 마주보며 天, 地, 人 하나 됨을 기리다.”라는 글이 양각되어 있다. 10여분 휴식 후, 조망처로 일품인 삼도봉을 뒤로한다.

09시50분, 무릎에 부담이 되는 550내림계단을 내리니 뱀사골 갈림인 화개재가 보인다. 장터자리엔 헬기장 표시가 있다. 장터목과 마찬가지로 지리능선 상에 옛날 산너머 사람들간의 장터가 열린 곳이다. 전북의 삼베, 산나물과 경남의 소금, 해산물 등의 물물교환장소였다고 한다.

화개재에서 헬기장이 있는 토끼봉(1534m)까지의 오름길에 이어, 다시 명선봉(1586m)을 오르내려 연하천에 이르는 길은 꽤 지루하고 힘이 드는 구간이다. 화개재에서 2시간 40분이나 걸려 중식 장소인 연하천에 도착했다. 이때 시간은 12시 30분이니, 때 맞춘 일정이다.

물이 많키로 소문이 난 연하천에 왠지 물이 신통치 않다. 우선 물수건으로 세수를 하고, 맨발에 물도 한번 끼어 보기도 하며 숨을 돌린다. 두 사람의 합류로 점심은 수월하게 준비된다. 햇반과 라면을 중심으로 식사를 마치고 여유있는 휴식을 갖는다. 1박 장소인 벽소령까지는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하천엔 그늘이 마땅치 않아 90여분 휴식을 끝낸다. 산행길에 더 좋은 휴식 장소를 찾아 거기서 쉬기로 하고 출발한다.
음정 갈림인 삼각고지(1462m)를 지나니 형제봉(1433m) 오름길이 멀리 보인다. 지난 달 부처님 오신 날, 지리산 7암자 순례길에 올랐던 삼정산 능선도 장쾌하게 보인다.

두 개의 암봉으로 된 형제봉도 좋은 조망처다. 지금은 폐쇄된 벽소령 군사도로가 뚜렷이 내려다 보이고, 바로 그 고개에 벽소령대피소가 그리 멀지 않게 조망된다. 허지만 벽소령까지는 50분 이상 가야한다.

형제봉에서 벽소령 가는 도중의 1392봉 길엔 두군데 로프길도 오른다. 그리 힘든 구간은 아니지만 많이들 지쳐있을 시간이라 무릎이 걱정인 친구와 몸이 다소 무거워 보이는 김부장은 힘들어 한다. 만약 반야봉을 다녀왔으면 우리는 종주계획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드디어 벽소령(1340m)에 닿았다. 2시간 20여분이나 소요되었다. 적절한 시간인 16시 20분경에 도착했다. 6시부터 입실배정이 되기 때문에 그 이전에 저녁식사를 마치는 게 좋다. 이 곳은 연하천보다도 훨씬 물이 귀하다. 70m 아래에 있는 탱크에서 미약하게 나오는 물을 담으려고 기다리는 산님들은 상당한 인내가 필요할 것 같다.
뒷 사람을 보니 양심상 물주머니 하나만 담고 올라와 저녁을 준비한다. 지리 산중에서의 첫날 저녁이다. 준비해온 각종 약주로 축배를 나눈다. 산길에서 합류한 산님들과 정식 인사도 나누며 반주가 이어지니 새로운 기분으로 전환이 된다.
무릎에 자신이 없는 친구는 내일 산행 여부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인지.. 벽소령에서 내려갈 궁리도 하고 있는 듯하다. 만약 탈출을 하려면 이 곳 벽소령이 최적지이기 때문이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는 대피소 뒤 야외 밥상은 그만 정리를 한다. 술기운이 많이 든 친구는 피곤함이 밀려오는지 배정 받은 대피소로 먼저 올라간다. 짐을 옮기고 담요를 대여받아 자리를 잡고는 밖으로 나와 저녁 지리산에 서 본다. 산 능선 너머로 넘어가는 해가 장관이다.
친구는 잠에 든 모양이다. 밤바람도 그리 차지 않은 지리산이라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하늘은 퍽 맑지는 않고 반달 모양의 달이 흐린 구름 뒤로 어렴풋이 보인다. 지리10경 중 제5경인 벽소명월(碧宵明月)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얕은 잠이라도 조금 보충하기 위해 잠자리로 돌아왔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한밤중의 별은 그래도 총총했다고 한다. 벽소명월이 아닌 벽소명성(碧宵明星)이었다고 한다.


6월22일(화) 둘째날, 지리산의 아침이 밝았다.

벽소령 동쪽 능선의 맑은 하늘금 아래는 붉으스레 물들어 온다. 역시 오늘도 날씨 복이 이어질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종주산님들도 불편한 잠자리라 일찍들 기상한다. 아침 준비와 함께 둘째날의 일정을 살피고는 계속 종주를 할 것인지 여부를 정리를 해야한다. 합류한 일행 두명은 지리산이 처음이라 힘이 들어도 오늘도 여전히 희망적인 모습이지만, 남은 길이 더 힘든 길임을 알아챈 친구는 계속 밍그적거린다. 만약 종주가 불가능하여 탈출하려면 이 곳 벽소령에서 음정쪽으로 하산을 하는 길이 가장 용이하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기는 너무 아쉽고.. 주변의 응원에 힘을 얻었는지.. 친구는 심신을 다시 추스르더니.. 당초 계획대로 천왕봉으로 향하기로 한다. 우리는 08시 정각에 맞추어 발길을 잡는다. 두 번째 숙소인 장터목까지는 약 9.7km로 5시간 정도 예상한다.

덕평봉(1522m)을 지나 1시간 15분여만인 09시15분에 선비샘 닿는다. 선비샘의 내력마냥 화전민 李노인 묘를 향해 고개 숙여 절하는 모습으로 물을 받아 목을 축인다. 역시 이곳에서도 물양치로 기분을 전환하고 09시35분경 다시 출발한다.

선비샘에서 중식장소인 세석까지는 칠선봉(1576m) 영신봉(1651m) 등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다소 힘든 구간이다. 마직막 날까지 체력을 안배하기 위해 쉬엄쉬엄 산행을 이어간다.

10시20분 지리주능의 첫 전망대가 있는 칠선봉 자락에 오른다. “천왕봉을 찾아보세요..” 안내판 뒤로 천왕봉이 다가선다. 정터목도 뚜렷이 시야에 들어온다. 천왕봉 조망이 일품이다. 지리 주능 조망을 한껏 즐긴 후 30여분 뒤 칠선봉 정상에 도착한다. 기암 아래 벽소령에서부터 4.2km, 세석까지는 2.1km를 알리는 표지가 있다.

잠시 휴식을 하고 11시 다시 영신봉을 향한다. 영신봉 오름길의 나무계단길은 색다른 조망길이다. 기암이 있는 영신봉길 조망바위에서 다시 숨 좀 돌리며 칠선봉쪽을 돌아보니 후경 또한 멋지다.

15분 걸려 영신봉(1651m)에 오르니 세석과 촛대봉 조망이 멋지게 펼쳐진다. 조망을 한껏 즐기고 0.6km만 내리면 바로 세석평전이 펼쳐지는 곳이다. 봄에는 지리산 철쭉산행으로 붐비는 곳이다. 내림길 주변엔 아직도 힘겹게 매달려 있는 철쭉이 보인다.

12시 20분경에야 세석(1557m)에 닿는다. 쉬는 걸음으로 점심시간에 때 맞춰 도착했다. 세석은 2005년 7월 방학 중인 둘째 아들과 종주를 할 때, 너무도 춥게 비박을 한 곳이라 잊을 수 없다. 점심 준비를 하기 전에, 그 때의 비박장소인 왼쪽 처마밑을 찾아가 기념사진부터 찍어 놓았다. 처마밑 옆으로 새로 낸 물길은 전에는 없었는데.. 주변을 새롭게 정비를 한 듯하다.

세석산장 후면 지붕 아래 휴게 테이블에 자리잡고 점심을 준비한다. 갈수기라 제1취수장은 휴무 중.. 70여m 아래 제2취수장까지 내려가 물을 받아와 물을 끓인다. 산중에서 조달할 수 있는 건 햇반과 라면 뿐.. 이미 정해진 식단에다 가져온 덮밥용 카레가 추가된 점심이다.

13시 45분경 세석을 떠난다. 눈앞에 전개되는 촛대봉 오름길은 잘 정리된 돌길이다. 오름길의 세석쪽 후경도 아름답다. 15분쯤 오르니 세석습지가 잘 정비되어 있다. 지리산은 다른 산에 비해 육산인 관계로 많은 물을 품고 있어 곳곳에 습지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들의 무관심으로 대부분 훼손되고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일례로 우리가 지난 온 임걸령 샘터도 그 일대가 습지였는데.. 산꾼들의 휴식 샘터로 전락했다고 한다.

세석습지를 지나 12분쯤 오르니 촛대봉(1703m)에 오른다. 백두대간 지리주능선이 “ㄱ”자 형태로 꺾이는 지점이다. “촛대봉에서 천왕봉까지는 4.4km입니다.”라는 안내판 뒤로 천왕봉의 웅자가 그대로 조망된다.

14시20분 촛대봉을 내려간다. 장군봉으로 가는 길엔 촛대봉과 세석쪽의 영신봉(1651m)의 후경 조망이 일품이다. 장터목까지 여유가 있어 쉬엄쉬엄 무리 없이 진행한다.

15시10분경 장군봉을 떠나 35여분 더 가면 시야가 사방으로 탁 터지는 전망바위봉이 나온다. 연하봉을 앞에 두고 천왕봉도 훨씬 가까이 전망되는 곳이다. 진행방향으론 이 전망바위 바로 아래 푸른 고개평전이 연하봉을 이어주며 천왕봉과 어울려 장관이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장군봉과 촛대봉 그리고 꺽어진 영신봉 능선이 하늘금을 그리며 다가온다. 맑은 날씨에 기념 사진도 한껏 담으며 조망을 즐긴 후, 15시50분, 철계단을 내려 연하봉을 향한다.

유한 능선고개를 20여분 지나 연하봉(1667m)에 오르니 16시 10분이다. 연하봉에서의 조망도 좋다. 한신계곡과 하산 방향인 백무동쪽 조망도 시원하게 내려 뻗고 있다. 연하봉에서 장터목 가는 길가에 멋진 고사목 하나가 눈길을 잡는데.. 주변과 어울려 멋진 그림을 그리고 서 있다.

촛대봉에서 주능선을 꺽어 내리며 지나온 능선 길은 큰 오르막도 없는 무난한 길이다. 특히 발걸음 마다 천왕봉을 계속 확인해 가며 가는 길이라 힘도 덜 든다.

16시40분경, 드디어 장터목(1653m)이 눈앞에 내려다보인다. 10여분 후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여 휴게테이블에 짐을 내려놓는다. 장터목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였으니, 약 8시간 50여분이 소요된 셈이다. 예상보다 많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천왕봉 연결 등정은 무산되었다.

산장 입실은 6시부터라.. 일단 석식부터 해결하기로 한다. 정해진 식단에 찬국은 찌개로 하여 준비하고.. 모두 무사한 산행에 축배를 곁들여야 하는데 반주가 부족하다. 결국 친구는 어렵사리 옆 테이블에 술동냥까지 하며 장터목 저녁을 즐겼다.

장터목 저녁 풍광이 만만찮게 나타난다. 만복대 능선 쪽으로 떨어지는 저녁놀이 볼만 하다. 출렁이는 산줄기 너머로 석양으로 그려진 지리능선 하늘금에 반야봉도 뚜렷하다. 쉽게 대면하기 힘든 광경이 바로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이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장터목 사람들에겐 행복한 시간인연이 아닐 수 없다.

연이은 피로에 수면도 부족한터라.. 입실 시간이 되자마자 친구는 먼저 잠자리에 든다. 동냥반주가 잠신을 일찍 불러온 모양이 되었다. 내일 천왕봉 일출시간은 05시 10분이라고 안내해 준다. 내일 천왕봉 해맞이를 위해서라도 대부분 산님들도 일찍 취침에 든다. 우리일행은 내일 03시에 기상하기로 약속해 두었다.

지리산대피소는 어디나 21시가 되면 무조건 소등을 한다. 그래서 잠자리가 불편해 잠을 쉽게 자지 못하는 사람도 별 다른 도리가 없다. 게다가 심히 코고는 사람도 많다 보니, 나같이 신경이 다소 예민한 사람은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한다. 선잠에 뒤치닥거리며 지리한 시간을 셈하며 또 한 밤을 지샜다.


6월23일(수) 세째날, 장터목대피소는 아직 한밤중인데 부스럭거린다.

새벽 03시가 되기 전인데.. 벌써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새벽 03시15분, 우리 일행은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다소 일찍 출발했다. 랜턴 불빛 길이 천왕봉쪽으로 이어가고 있다.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아 다행이다. 오늘도 쉬엄쉬엄 무리하지 않고 오른다. 어둠 속에 발밑만 보고 조심스레 걷다보니 힘드는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04시35분경 지리산 정상 아래에 이미 도착했다. 정상은 새벽바람 추위가 만만찮은 터라.. 이곳의 바람막이가 되는 바위 뒤에서 일출을 기다리기로 한다.

근데, 이 날 이 시간은 바로 우리나라의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한 마지막 조별예선 전이 진행되는 시간이다. 이 천왕봉 정상에도 붉은악마 응원단이 모여 있었다. 정상 곳곳에 나이지리아와 결전이 생중계되는 DMB폰따라 삼삼오오 모여 열광하고 있었다.

전반을 1:1로 마친 후, 후반에 박주영의 역전골이 터지자 예기치 못한 새벽 함성에 천왕봉도 놀랐을 것이다. 다시 동점골을 내 주고 공방을 계속하다가, 05시 25분경 마지막 종료 휘슬이 울리는 시간에 또 다시 커다란 함성이 지리산 꼭대기에 울려 퍼져 나갔다.

역사적인 시간에 천왕봉에 있었다. 일출 예정시간인 05시10분을 훨씬 넘게 지났는데도 아직 일출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다소 구름이 두터운 것 같다. 정상석 주변에 있던 일부 사람들은 일찍 포기를 하고 내려가고 있다. 산행중에 만나 함께했던 일행 중 1명(경찰관 아가씨)도 하산 시간 관계상 중산리쪽으로 먼저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천왕봉에서 먼저 작별을 했다.

꽤 긴 기다림 끝인, 05시57분쯤에야 드디어 붉그스레 얼굴을 내밀며 멀리 구름 위로 탁구공만한 해가 떠올랐다. 남한 내륙 최고봉인 천왕봉 일출이다. 운해 속에서 떠오르는 일출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격에 걸맞은 장관을 연출해 주고 있었다. 3대의 선복이 있어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이다. 2005년에 이어 두 번째 보는 광경이다. 그러니 조상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정상석 주변엔 기념사진 순서로 복잡한 것 같다.. 사람들이 좀 잦아지고 날도 많이 밝아진 후에 다시 천왕봉(1915m) 정상에 올랐다. 정상석 후면엔 “한국인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한 곳.. 이 곳에서 지리의 精氣를 다시금 받아 본다. 모든 것이 이 천왕봉 아래로 열리고 있음을 실감해 본다.. 신선하다..

06시05분경, 기념사진도 남기고 또 정상 주변 조망도 다시한번 더 둘러 본 후, 여유있게 정상을 내려왔다.

오름길 어둠 속에 오를 땐 보지 못한 천왕봉 길의 장관들이 속속 드러난다. 내림길에 우선 만나는 고사목길의 운치와 하늘문인 통천문 그리고 제석봉(1808m)의 풍광 등.. 아침 햇살을 받은 운치가 오히려 더 신선한 것 같다.

07시20분, 지리산의 맑은 아침 기운을 받으며 천왕봉을 내려 장터목에 닿았다. 실제 지리 종주의 대미가 장식된 순간이다. 특히 친구에겐 한때 중도포기 할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기에 다소 감격적일 수도 있을 성 싶다. 모든 게 지나고 나면 개운하다. 중도에 어려움이 있었더라도 아마도 지금 이 시간은 퍽이나 편할 터이다. 이젠 큰 부담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이후는 서서히 하산길만 내리면 된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장터목을 떠날 준비를 한다. 마지막이라 짐도 많이 줄어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08시30분, 산장 뒤쪽으로 안내되는 백무동쪽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45분쯤 내린 길에 만난 적송이 있는 조망터에서 쉬어간다. 장터목이 바로 조망되는 좋은 쉼터이다.
09시25분. 적송 쉼터를 출발하여 35분쯤 내려가면 소지봉(1312m)이다. 소지봉부터는 상백무까지는 거의 급경사 돌길이 이어진다. 다리와 무릎이 많이 피로한 터라 급경사 내림이 수월치 않다.
25분쯤 내려 10시25분경에 참샘(1125m)에 닿았다. 여기서 물양치도 하며 15분 정도 피로를 풀고 간다. 20여분 내려가니 계곡물이 있는 곳에 이른다. 예선 10여분 탁족(濯足)을 하며 발의 수고를 달래주고 떠나기로 한다.
11시10분경, 탁족터를 떠나 15분여를 계속 힘든 내림길을 내려오면 출렁교와 하동바위(900m)가 나온다. 표지를 보니 장터목에서부터 4.0km이고, 백무동까지는 아직 1.8km를 더 내려가야 한다.

12시25분경, 하산길의 마지막 대나무길을 지나 상백무에 도착했다. 백무동까지는 300m 남았다. 산악인의 쉼터와 백무동탐방센터를 지나 버스터미널까지는 10여분 소요되었다.

13시30분 발 버스를 타기로 하고, 인근 음식점(옛고을 식당)으로 가서 우선 시원한 맥주 한잔하고 식사를 주문.. 산님들을 위한 샤워공간이 있다기에 간단한 샤워도 하고 점심을 때웠다.

13시30분, 동서울행 차에 몸을 싣고는.. 모든 짐은 저절로 다 내려놓아졌다.
길.. 길은 가야 할 길이 있고, 가고 싶어도 가지 말아야 하는 길이 있다. 이번 지리산 종주길은 일면의 삶의 여정도 함께 되집어 본 시간이었다.

제주 올레길에 이은 지리산 둘레길.. 그리고 고향 강릉에도 솔향길과 감자바우길..

요즘 길에 관심이 커지며 길이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친구는 스페인에 있는 유명한 성지 순례길인 ‘산티아고 가는 길’에 관심이 크다. 야곱이 걸어 간 길로 약 800km의 산길을 무심히 걸어가야 하는 순례길이다. 친구는 그 길을 체험해 보고 싶어 한다.

이번 지리종주길보다 더 힘든 고행의 길일 터인데.. 소망대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2박 3일 지리종주..
천왕봉 일출까지.. 무사한 일정에 감사하며..

모두 날마다 좋은 날이기를 기원한다..

“日日是好日”

2010.6.28. 현담 감사합장.


*추신 : 강구회 카페에 종주산행 사진이 있으니 참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