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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배낭여행기< 2009년 7월 >
평소 가깝게 지내는 동료 세 명과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일본열도 여행을 해보자고 의논이 되었는데 막상 떠나려하니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모두 60대라 8박 9일간의 빡빡한 여행일정을 소화해 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 일본어는 내가 조금 가능하긴 하지만 다른 이들은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도 걱정스러웠다.
여행 계획은 인터넷으로 꼼꼼히 세웠는데 부산에서 배로 후쿠오카로 가서 곧장 도쿄까지 간 다음 후지(富士)산 등산을 하고 후쿠오카로 내려오면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짰다. 카페리는 경로할인가격으로 왕복 18만원, 일주일짜리 JR패스는 하필이면 엔화가 가장 비쌀 때(100엔이 1440원)여서 41만원...
<1> 후쿠오카(福岡)의 하카다항(博多)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의 모텔에서 자고 9시 배로 떠났는데 쾌속선이라 2시간 50분 만에 하카다항에 도착하였다. 버스로 하카다역까지 이동하여 도쿄행 신칸센의 좌석을 예약하여 출발시간이 가까웠는데 방송으로 야마구치현(山口縣)에 폭우가 내려 철도가 불통... 복구중이라 기다리라고 한다. 할 일없이 두어 시간을 대합실에서 서성거리다가 결국 운행중지로 다음날 표를 예약하고 호텔을 잡으러 역 앞을 서성거리다 저렴하기로 소문난 토요코인(東橫Inn)에 짐을 풀었다.
결국 다음 날에도 아침부터 대합실에서 서성거리다가 떠나지 못하고 결국 이틀을 허비하고 말았다. 그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 날로 잡혀있는 아소(阿蘇)산, 구마모토성(熊本城) 관광과 벳부(別府) 온천이나 다녀올 것을.... 하릴없이 대합실(계속 기다리라는 방송)에서 서성거리다 오후에 후쿠오카 시내 관광을 하였다.
妙樂寺, 聖福寺, 承天寺, 東長寺, 若八幡宮(와가하찌방궁:神社)을 돌아보았는데 역 근처에 있어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다. 일본의 절들은 생각보다 건물이 컸고, 정원과 수목들이 잘 가꾸어져 있었는데 지나치다할 정도로 깨끗하였다. 다른 절들도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묘락사의 경내는 크고 작은 묘비들로 온통 가득 차 있어 묘지라고 하는 것이 더 가깝겠다. 바로 담장 옆에 아파트가 있는데도 많은 묘비 앞에 향이 타오르고 있고 꽃이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일본사람들의 조상숭배와 또 도시 가운데 묘지가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국민의식도 놀라웠다.
<2> 일본의 심장 도쿄(東京)
아침 7시 04분에 출발한 신칸센(新幹線)은 9시 44분에 오사카(大阪)에 도착, 10시 13분 기차로 갈아타고 도쿄에 도착하니 오후 1시 10분이다.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신칸센으로 5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모양이다.
신주쿠(新宿)에 짐을 풀고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皇居御園과 요요기(代代木)공원으로 갔다. 치요다(千代田)에서 시부야(淽谷)까지는 이른바 도쿄의 심장부로 니주바시(二重橋), 니혼바시(日本橋)를 비롯한 숱한 다리와 御苑, 히비야공원, 요요기공원 등 시민들의 휴식처로 조성되었는데 엄청나게 넓은 면적에 울창한 수림이 우거져 있고 티끌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요요기공원 안에 있는 메이지신궁(明治神宮)을 보러 갔더니 시간이 지났다고 입장을 시키지 않는다.
다음날은 후지산 등산이 계획되어 있어 호텔에서 교통편도 확인하고 등산루트도 다시 확인하고 있는데 TV에서 후지산 등산객의 조난을 방송한다. 화면에 보니 뿌옇게 안개가 끼었는데 20대 중반의 두 젊은이가 7부 능선 부근에서 강풍에 휘말려 추락하였는데 수색하느라 헬기가 뜨고 난리다. 해발 3776m... 갑자기 모두 자신이 없어졌다.
등산객 6~70%가 고산병에 시달린다 하고, 비도 올뿐더러 정상부근은 몹시 춥고 위험하여 7~8월만 일반에 개방하고 나머지 달은 심사를 받아야 등산허가가 난다고 한다.
결국 후쿠오카에서 이틀을 까먹은 것을 핑계로 등산을 포기하기로 결정하였다.
다음날 오전에 메이지신궁과 근처를 더 돌아보고 오후에 나고야로 향하였다.
<3> 항구도시 나고야(名古屋)와 기후(岐阜)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나고야는 일본 3대 무역항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아침을 먹은 후 기후(岐阜)에 있는 전통마을 구조하치만(郡上八幡)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물의 마을(水の里)이라고도 불리는데 옛 에도(江戶)시대의 전통이 살아있는 곳으로 일본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하여 내가 적극 주장하였던 곳이다.
젊은이들은 잘 몰라서 노인들한테 물어물어 기차를 탔는데 예상보다 훨씬 멀었고,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곳이었다. 기후는 산악지대로 기차가 꼬불꼬불 산속으로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간다. 갈아타야한다는 역에 내려 물어보았더니 이곳부터는 JR패스로 안되고 표를 사야하며, 또 2시간 이상이나 더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단다.
결국 일본 전통초가집인 갓쇼우조(合掌造)와 전통생활모습 관광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오기도 그래서 역부근의 관광지를 알아보았더니 日本昭和村이 있다고 하여 택시를 탔는데 2000엔(47.000원)이나 나왔다. 기본료가 620엔(8.500원)이니....
우리나라 민속촌 비슷하게 꾸며놓았는데 성인대상이 아니라 학생들 교육실습용 비슷하여 실망하였지만 손님도 별로 없어 전통 차도 마시며 그런대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나오는 교통편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길거리 사람에 물었더니 안내소의 직원을 통하여 콜택시를 부르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왕복요금까지 택시비 걱정을 하였는데 10분쯤 후 나타난 택시는 기차역까지 미터요금만 받는 것이 아닌가? 다행이고, 일본은 거의 여행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은 없는 것 같으며 특히 길이라도 물어보면 너무도 친절하여 미안할 정도이다.
이튿날 나고야(名古屋)성을 보러 갔다. 길 하나를 두고 성 건너편에는 이 성을 축조하였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동상이 있고, 일본의 전통극인 노(能) 공연장이 있었다. 城은 그다지 크지는 않았으나 해자(垓字)로 둘러싸인 오래된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특히 용마루에 얹혔었다는 엄청나게 큰 황금 물고기가 있었는데 잉어인듯...절마다 있다.
<4> 고도(古都) 교토(京都)의 이모저모
교토는 8세기 나라(奈良)에서 천도하여 온 후 당시에 지어진 무수한 건축물들을 잘 보존하여 城과 寺刹 등을 일괄하여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古都이다.
교토역에 도착하여 바로 옆에 있는 교토타워에 올랐다. 131m라는 타워 정상은 그다지 넓지 않았는데 도시 전체가 조망되었다. 우리가 관광할 사찰과 신궁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방을 둘러멘 채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로 향하였는데 한창 보수 중이었다.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의해 건축되었다는 혼간지(本願寺)는 엄청난 건물규모에 압도되는데 기둥의 굵기가 정말 엄청나다. 신발을 벗고 회랑을 거닐다가 유물 전시실도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호텔보다 기왕이면 전통 일본여관에 一泊해 보자고 전통 여관촌을 기웃거려보았는데 평균 1인당 8천 엔(10만 5천원) 정도로 비싸서 놀랐다. 가다가 1인당 4,200엔(5만 5천원)이라 써 붙인 허름한 여관이 보여 주인을 불렀더니 꾀죄죄한 차림의 중늙은이가 나와서 다다미방 1개를 주고 아침은 없으며 밤 10시 이후에는 문을 걸어 잠그고...결국 여관을 포기하고 가장 저렴한 도요코인(東橫Inn)호텔에 짐을 맡기고 간단히 점심을 때운 후 서둘러 키요미즈데라(淸水寺)로 향하였다.
태평양전쟁을 결정하였다는 淸水寺는 수림이 울창한 산자락 끝에 있었는데 붉은 산문, 우뚝 솟은 3층 天守閣, 투신자살 장소로 이름난 계곡 절벽에 세워진 목조 5층 베란다, 청수사란 이름이 연유한 무병장수한다는 맑은 세 줄기 물줄기 등이 인상적이었다. 줄을 서서 기다려 처마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표주박으로 받아 마셨는데 물맛이 좋다. 키요미즈데라(淸水寺)는 서기 778년에 창건되었는데 소실되었다가 1633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청수사 입구를 나서면 바로 오른쪽에 엄청나게 큰 大佛이 보이는데 寶性院대불이라고 하며 안내판에 태평양전쟁 전몰자들을 위하여 모셨다는...
무심코 거닐어 본 청수사 아랫녘 마을은 관광객들을 위한 일본전통거리로 좁은 골목엔 일본 전통복장의 사람들이 거닐고 있고 전통복의 인력거꾼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이 국보로 지정된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칸이 33개로 무척 긴 집이다. 실내에는 사람크기의 금동불상 1001개가 모셔져 있었는데 자세와 표정이 모두 다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東京)에서 교토를 방문했을 때 저택으로 사용했다는 니조조(二條城)는 그다지 크지는 않았으나 특유의 우뚝 솟은 天守閣과 특히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키다노텐만구(北野天滿宮)은 교토 북쪽에 위치한 큰 사당으로 主神은 신라인이라던가... 이른 봄 매화꽃이 유명하고, 사당 내에는 사람들이 봉헌한 수백 개의 石燈이 있었다. 또 사당 둘레의 담벼락 밑에는 벼룩시장이 벌어져 가지가지 물건들을 땅바닥에 펼쳐놓고 있었고, 사당 입구에는 꼬치와 덴뿌라, 붕어빵 종류 등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죽 늘어서 있어 재미있었다.
긴가쿠지(金閣寺)는 원 이름이 긴가쿠로쿠온지(金閣鹿苑寺)였다. 빗줄기 속에 경내를 한 바퀴 돌았는데 연못 한가운데 있는 본당은 3층으로 지붕부터 전체가 금박을 입혔는지 황금빛으로 빛난다. 용마루위의 봉황새는 순금으로 만들었다고...또 재미있는 것은 입장권을 자르지 않고 주는데 세로로 기다란 부적모양이다. 집에 보관하거나 지니고 다니면 좋다던가..
14세기에 건축된 금각사는 정원이 유명한데 불교의 극락정토를 현세에 재현하였다고 하며 아기자기한 숲속 길을 돌아 나오는 산책로가 예뻤다. 이 또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일본에는 일본인들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이런 절이나 神社 또는 神宮들이 수도 없이 많다. 택시를 타고 가며 기사에게 절과 신사가 무척 많다고 했더니‘도쿄(東京)에는 도로(町:마치)가 팔백 개, 교토(京都)에는 절(寺:데라)이 팔백 개’라는 속담이 있단다. 또 신사와 신궁의 차이점을 물었더니 神社는 고승이나 학자들, 또는 조상들을 모시고, 神宮은 일본 개국신이나 황실의 가족을 모시는 것이 아니겠냐며 확실히는 모르겠다는 답변이었다.
<5> 고도(古都) 나라(奈良)의 풍광(風光)
나라(奈良)는 4세기 지방의 호족들이 힘을 합쳐 야마토(大和)정권을 수립하고 최초로 수도로 삼은 곳. 중국의 장안을 본떠 도시를 설계했다고 한다.
그 이후 불교를 받아들이고 문예를 부흥시켜 국가의 기틀을 잡는데 백제의 왕인박사는 천자문을 가져다 가르치고, 호오류사(法隆寺)를 지은 후 신라의 불교화가인 담징을 모셔 벽화를 그리게 하고, 또 백제의 아좌태자를 모셔다가는 쇼도쿠태자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백제가 멸망하자 백제인 2만 명이 이곳으로 이주해와 아스카(飛鳥)문화를 꽃피웠다던가.
처음으로 찾은 곳은 도다이지(東大寺)로 절 입구에 들어서자 수많은 사슴들이 나무밑에 누워있기도 하고 길까지 나와 관광객을 졸졸 따라다녀서 신기했다. 머리를 쓰다듬고 귀를 만져도 그저 가만히 있다. 엄청나게 넓은 경내 가는 곳마다 있으니 수백 마리는 되겠다. 관광객들이 먹이(鹿せんべい)를 주어 따라다니는데 길옆에는 먹이봉지를 파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목조건물로는 일본에서 제일 크다는 도다이지(東大寺)는 本殿 건물은 물론이려니와 절 입구의 산문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국보인 동대사 목조대불도 엄청나게 큰데 전체가 검은색이다.
재미있는 것은 대불 왼편 뒤쪽의 기둥 아래쪽에 구멍이 뚫려있는데 부처님의 콧구멍이라고도 하고 손가락 구멍이라고도 하며, 사람이 그 구멍으로 빠져나오면 무병장수한다나... 날씬한 관광객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빠져나오는데 기둥이 얼마나 굵은지 사람이 들어가면 머리와 발이 안보일 정도다.
산자락에 위치한 가스카타이샤(春日大社)는 큰 규모의 사당(祠堂)으로 서기 768년에 창건되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여기도 사람들의 염원을 비는 석등이 수도 없이 들어서 있는데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과 액수를 새긴 대리석들이 길옆에 서있다. 옛날의 오백 엔짜리부터 요즈음의 천만 엔짜리까지...이곳에는 석등(石燈)이 1800여 개, 금속등(金屬燈)이 1000여 개 있다고 한다.
높이 50m의 고주노토(五重の塔)로 유명한 고후쿠지(興福寺)는 그 밖에도 산주노토(三重の塔), 2만 여점의 중요 문화재와 공예품을 보유하고 있는 고쿠호칸(國寶館)이 유명하다.
상설 전시관에서는 국보급 문화재를 볼 수 있었는데 마침 창건 1300년을 기념하는 국보전을 큐슈(九州)에서 열고 있어 유명한 아수라(阿修羅)상은 임대중이라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다. 전시물 중 대부분은 불교관련 목조인물입상(木造人物立像)이다.
오후에 이카루카(斑鳩)지역의 레이산지(靈山寺)에서부터 산길을 따라 東明寺, 矢田寺, 松尾寺를 거쳐 호오류지(法隆寺)에 이르는 5km정도의 등산을 할 예정으로 기차와 택시를 타고 靈山寺까지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제법 빗줄기가 굵어진다. 하는 수 없이 1km정도 떨어진 암자까지 우산을 쓰고 갔다가는 돌아와 절을 둘러보았는데 등산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靈山寺는 祖師가 특이하게도 여자였는데 모셔진 불상들로 보아 중국의 道敎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황금과 백금으로 법당을 지은 黃金殿, 白金展이 있고 경내에 온천탕이 있는 것도 특이했다. 절 앞에서 산 밑을 빙 돌아 호오류지까지 버스나 기차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없어서 당황했다. 자전거를 타고가는 남학생(고등학생)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버스노선까지 보아주며 친절하게 알려주는데 결국 버스로 나라까지 다시 가야 된다고...버스에서 만난 젊은 여성은 호오류지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자기는 잘 모른다며 엄마한데 핸드폰으로 전화하여 물어보면서까지 알려주었다.
아좌태자와 담징의 혼이 서려있는 호오류지(法隆寺)는 아스카(飛鳥)시대에 지어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불교를 일으킨 쇼도쿠태자(聖德太子)에 의해 서기 670년에 지어졌다고 하니 13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셈이다. 이 절은 일본 고유수종인 히노키(檜:측백종류)로 지었다고 하는데 히노키는 잘 썩지 않는다고 하여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고 한단다.
나라(奈良)는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백제 영향인지... 길거리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너무나도 친절하고 상냥하였다. 우리 핏줄이 섞여서 그런게 아닌가 가깝게만 느껴진다. 교토와 나라는 외국 관광객이 무척 많은데 몇몇 서양 관광객에게 한국엘 가봤느냐고 물었더니 가지 않았다고... 좋은 관광꺼리가 많으니 꼭 한번 가보라고 관광 홍보도 하였다.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중의 하나는 어떤 동양인이 느닷없이 교토어원(御苑)이 어디냐고 묻는다. 마침 우리가 막 다녀오던 길이라‘이 담벼락을 따라 쭉 가다가....’하면서 보니 서양 사람을 두 명 안내하는 모양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일본인이란다. 세상에..... 내가 웃으면서‘나는 한국인이요~~~.’했더니 계면쩍은 웃음으로 어쩔 줄 몰라 한다. 한국 사람이 일본인 가이드한테 길을 알려준 셈이다. 두 외국인은 멕시코인이라는데 영어로 내가 텍사스와 뉴멕시코 여행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비록 서툴기는 하지만 젊어서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해 둔 것이 오늘날 이처럼 여행하는데 편리할 줄이야....
<6> 대도시 오사카(大阪)
오사카는 예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오갔던 일본 제2의 도시로 港口도시이자 運河의 도시이다. 우리나라 부산에서 카페리가 이곳 오사카까지 직접 오는 것도 있는데 열여덟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후쿠오카에서 부산으로 가는 오후 3시 30분 배가 예약이 되어있어 서둘러 오사카조(大阪城)만 보기로 하였다. 오사카에서 후쿠오카 하카다까지 신칸센 히카리호로 2시간 40분정도 걸린다. 나고야(名古屋)성, 구마모토(熊本)성과 함께 일본의 3대 성으로 불리는 오사카(大阪)은 규모면에서 가장 크다.
깊고 넓은 해자로 둘러싸인 성은 높은 언덕위에 늠름하게 우뚝 솟아있다. JR기차역에서 성으로 들어가려면 해자에 걸린 돌다리를 건너 구불구불 돌이 깔린 언덕길을 상당히 걸어 올라가야 한다. 성벽은 어마어마하게 큰 돌을 일정하지 않은 모양으로 깎아 교묘하게 석축을 쌓아올렸는데 페루 잉카인들 석축기술의 정교함에서는 못 미치지만 그 규모와 크기에서는 단연 앞섰다.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하여 16세기에 건축되었다는 이 성은 태평양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다는데 그 수려한 외모와 일본건물 특유의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모습은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웅장하였다.
오중탑(五重の塔) 구조의 天守閣은 오래된 목조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복원하면서 많은 부분이 철구조물로 바뀌었고, 맨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나선형의 계단이 있어 걸어서 오르내릴 수도 있다.
각 층별로 많은 유물과 사진이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촉박하여 엘리베이터로 정상까지 올랐다가 계단을 통하여 차례로 내려오면서 전시품들을 관람하였다.
일본의 城이나 절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하나같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대체로 일본인들을‘축소지향형’-작은 것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알고 있었는데 옛날의 일본인들은 지금과 달리 무엇이든 크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런 거대한 건축물들(특히 거대한 돌로 쌓은 성곽과 해자)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했을꼬..... 시간이 촉박하여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비지땀을 흘리며 역으로 와서는 도시환상선(都市環狀線)을 타고 오사카역까지 와서 다시 신오사카역까지 가야 후쿠오카행 신간센을 탈 수 있다.
관광에 정신을 빼앗긴 탓으로 가까스로 시간에 맞추었는데 신칸센이 오르고 1분도 채 안되어 출발하였다. 이 기차를 놓쳤으면 어찌할 뻔 했을까...
8박 9일간의 배낭여행을 마치며 뒤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한편 폭우로 인하여 계획하였던 후지산 등산과 아소산 등산을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 한 가지는 일본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한 끼 식사가 우리 돈으로 8천~1만 원정도인데 양이 너무 적고 반찬도 없어 평소 식사량이 많은 사람은 어렵겠다는 느낌이 들었고, 숙박비도 너무 비싸 젊은이들은 부담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에는 한국인이 하는 민박도 있는 모양인데 그것도 1인당 4만 원은 주어야 한다.
호텔도 그렇지만 민박도 사진에서 보니 돌아서기가 어려울 정도로 좁다. 그리고 교통비도 만만치 않아 가급적 JR패스를 이용하는 것이 그래도 싸다는 생각이었다. 환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버스 기본요금이 2500원 정도, 택시 기본료가 8000원 정도였다.
기차도 지역노선(Local)은 물론이려니와 신칸센은 엄청나게 비싸다. 8박 9일간의 여행경비가 대충 16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오히려 패키지로 여행하는 것이 더 쌀 수 있다. 단지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일본의 古城에서는 말을 탄 뿔 달린 괴상한 투구의 쇼군(將軍)과 깃발을 등에 꽂고 달려가는 일본의 옛 군사들 모습, 성을 공격하고 지키는 치열한 전투장면이 연상되었고, 또 어둑한 달밤,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닌자(隱者)들이 담벼락 위로 소리 없이 달려가는 모습도 연상되어 즐거웠다.
어느 곳에서나 줄서는 일본인들, 미소 띤 얼굴로 소곤소곤 작은 소리로 말하고 관광객(외국인)들에게는 자기 일을 팽개치고 직접 나서서 길을 가르쳐 주고 자신이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라도 가르쳐 주던 일본인들, 말끝마다 ‘아리가도, 스미마셍,...’
몇 년 전이던가 일본에서‘오아시스’운동이 전개되었다고 한다.
-오하요 고자이마스(안녕하세요?)
-아리가도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시쓰레이시마스(실례합니다.)
-스미마셍(미안합니다.)
우리나라의‘아나바다운동’이나‘고미안운동’도 여기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철저한 청결의식 등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국제매너라고 생각되었다.
아무튼, 일본은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된 선진국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結>
평소 가깝게 지내는 동료 세 명과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일본열도 여행을 해보자고 의논이 되었는데 막상 떠나려하니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모두 60대라 8박 9일간의 빡빡한 여행일정을 소화해 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 일본어는 내가 조금 가능하긴 하지만 다른 이들은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도 걱정스러웠다.
여행 계획은 인터넷으로 꼼꼼히 세웠는데 부산에서 배로 후쿠오카로 가서 곧장 도쿄까지 간 다음 후지(富士)산 등산을 하고 후쿠오카로 내려오면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짰다. 카페리는 경로할인가격으로 왕복 18만원, 일주일짜리 JR패스는 하필이면 엔화가 가장 비쌀 때(100엔이 1440원)여서 41만원...
<1> 후쿠오카(福岡)의 하카다항(博多)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의 모텔에서 자고 9시 배로 떠났는데 쾌속선이라 2시간 50분 만에 하카다항에 도착하였다. 버스로 하카다역까지 이동하여 도쿄행 신칸센의 좌석을 예약하여 출발시간이 가까웠는데 방송으로 야마구치현(山口縣)에 폭우가 내려 철도가 불통... 복구중이라 기다리라고 한다. 할 일없이 두어 시간을 대합실에서 서성거리다가 결국 운행중지로 다음날 표를 예약하고 호텔을 잡으러 역 앞을 서성거리다 저렴하기로 소문난 토요코인(東橫Inn)에 짐을 풀었다.
결국 다음 날에도 아침부터 대합실에서 서성거리다가 떠나지 못하고 결국 이틀을 허비하고 말았다. 그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 날로 잡혀있는 아소(阿蘇)산, 구마모토성(熊本城) 관광과 벳부(別府) 온천이나 다녀올 것을.... 하릴없이 대합실(계속 기다리라는 방송)에서 서성거리다 오후에 후쿠오카 시내 관광을 하였다.
妙樂寺, 聖福寺, 承天寺, 東長寺, 若八幡宮(와가하찌방궁:神社)을 돌아보았는데 역 근처에 있어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다. 일본의 절들은 생각보다 건물이 컸고, 정원과 수목들이 잘 가꾸어져 있었는데 지나치다할 정도로 깨끗하였다. 다른 절들도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묘락사의 경내는 크고 작은 묘비들로 온통 가득 차 있어 묘지라고 하는 것이 더 가깝겠다. 바로 담장 옆에 아파트가 있는데도 많은 묘비 앞에 향이 타오르고 있고 꽃이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일본사람들의 조상숭배와 또 도시 가운데 묘지가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국민의식도 놀라웠다.
<2> 일본의 심장 도쿄(東京)
아침 7시 04분에 출발한 신칸센(新幹線)은 9시 44분에 오사카(大阪)에 도착, 10시 13분 기차로 갈아타고 도쿄에 도착하니 오후 1시 10분이다.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신칸센으로 5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모양이다.
신주쿠(新宿)에 짐을 풀고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皇居御園과 요요기(代代木)공원으로 갔다. 치요다(千代田)에서 시부야(淽谷)까지는 이른바 도쿄의 심장부로 니주바시(二重橋), 니혼바시(日本橋)를 비롯한 숱한 다리와 御苑, 히비야공원, 요요기공원 등 시민들의 휴식처로 조성되었는데 엄청나게 넓은 면적에 울창한 수림이 우거져 있고 티끌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요요기공원 안에 있는 메이지신궁(明治神宮)을 보러 갔더니 시간이 지났다고 입장을 시키지 않는다.
다음날은 후지산 등산이 계획되어 있어 호텔에서 교통편도 확인하고 등산루트도 다시 확인하고 있는데 TV에서 후지산 등산객의 조난을 방송한다. 화면에 보니 뿌옇게 안개가 끼었는데 20대 중반의 두 젊은이가 7부 능선 부근에서 강풍에 휘말려 추락하였는데 수색하느라 헬기가 뜨고 난리다. 해발 3776m... 갑자기 모두 자신이 없어졌다.
등산객 6~70%가 고산병에 시달린다 하고, 비도 올뿐더러 정상부근은 몹시 춥고 위험하여 7~8월만 일반에 개방하고 나머지 달은 심사를 받아야 등산허가가 난다고 한다.
결국 후쿠오카에서 이틀을 까먹은 것을 핑계로 등산을 포기하기로 결정하였다.
다음날 오전에 메이지신궁과 근처를 더 돌아보고 오후에 나고야로 향하였다.
<3> 항구도시 나고야(名古屋)와 기후(岐阜)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나고야는 일본 3대 무역항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아침을 먹은 후 기후(岐阜)에 있는 전통마을 구조하치만(郡上八幡)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물의 마을(水の里)이라고도 불리는데 옛 에도(江戶)시대의 전통이 살아있는 곳으로 일본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하여 내가 적극 주장하였던 곳이다.
젊은이들은 잘 몰라서 노인들한테 물어물어 기차를 탔는데 예상보다 훨씬 멀었고,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곳이었다. 기후는 산악지대로 기차가 꼬불꼬불 산속으로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간다. 갈아타야한다는 역에 내려 물어보았더니 이곳부터는 JR패스로 안되고 표를 사야하며, 또 2시간 이상이나 더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단다.
결국 일본 전통초가집인 갓쇼우조(合掌造)와 전통생활모습 관광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오기도 그래서 역부근의 관광지를 알아보았더니 日本昭和村이 있다고 하여 택시를 탔는데 2000엔(47.000원)이나 나왔다. 기본료가 620엔(8.500원)이니....
우리나라 민속촌 비슷하게 꾸며놓았는데 성인대상이 아니라 학생들 교육실습용 비슷하여 실망하였지만 손님도 별로 없어 전통 차도 마시며 그런대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나오는 교통편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길거리 사람에 물었더니 안내소의 직원을 통하여 콜택시를 부르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왕복요금까지 택시비 걱정을 하였는데 10분쯤 후 나타난 택시는 기차역까지 미터요금만 받는 것이 아닌가? 다행이고, 일본은 거의 여행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은 없는 것 같으며 특히 길이라도 물어보면 너무도 친절하여 미안할 정도이다.
이튿날 나고야(名古屋)성을 보러 갔다. 길 하나를 두고 성 건너편에는 이 성을 축조하였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동상이 있고, 일본의 전통극인 노(能) 공연장이 있었다. 城은 그다지 크지는 않았으나 해자(垓字)로 둘러싸인 오래된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특히 용마루에 얹혔었다는 엄청나게 큰 황금 물고기가 있었는데 잉어인듯...절마다 있다.
<4> 고도(古都) 교토(京都)의 이모저모
교토는 8세기 나라(奈良)에서 천도하여 온 후 당시에 지어진 무수한 건축물들을 잘 보존하여 城과 寺刹 등을 일괄하여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古都이다.
교토역에 도착하여 바로 옆에 있는 교토타워에 올랐다. 131m라는 타워 정상은 그다지 넓지 않았는데 도시 전체가 조망되었다. 우리가 관광할 사찰과 신궁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방을 둘러멘 채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로 향하였는데 한창 보수 중이었다.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의해 건축되었다는 혼간지(本願寺)는 엄청난 건물규모에 압도되는데 기둥의 굵기가 정말 엄청나다. 신발을 벗고 회랑을 거닐다가 유물 전시실도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호텔보다 기왕이면 전통 일본여관에 一泊해 보자고 전통 여관촌을 기웃거려보았는데 평균 1인당 8천 엔(10만 5천원) 정도로 비싸서 놀랐다. 가다가 1인당 4,200엔(5만 5천원)이라 써 붙인 허름한 여관이 보여 주인을 불렀더니 꾀죄죄한 차림의 중늙은이가 나와서 다다미방 1개를 주고 아침은 없으며 밤 10시 이후에는 문을 걸어 잠그고...결국 여관을 포기하고 가장 저렴한 도요코인(東橫Inn)호텔에 짐을 맡기고 간단히 점심을 때운 후 서둘러 키요미즈데라(淸水寺)로 향하였다.
태평양전쟁을 결정하였다는 淸水寺는 수림이 울창한 산자락 끝에 있었는데 붉은 산문, 우뚝 솟은 3층 天守閣, 투신자살 장소로 이름난 계곡 절벽에 세워진 목조 5층 베란다, 청수사란 이름이 연유한 무병장수한다는 맑은 세 줄기 물줄기 등이 인상적이었다. 줄을 서서 기다려 처마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표주박으로 받아 마셨는데 물맛이 좋다. 키요미즈데라(淸水寺)는 서기 778년에 창건되었는데 소실되었다가 1633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청수사 입구를 나서면 바로 오른쪽에 엄청나게 큰 大佛이 보이는데 寶性院대불이라고 하며 안내판에 태평양전쟁 전몰자들을 위하여 모셨다는...
무심코 거닐어 본 청수사 아랫녘 마을은 관광객들을 위한 일본전통거리로 좁은 골목엔 일본 전통복장의 사람들이 거닐고 있고 전통복의 인력거꾼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이 국보로 지정된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칸이 33개로 무척 긴 집이다. 실내에는 사람크기의 금동불상 1001개가 모셔져 있었는데 자세와 표정이 모두 다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東京)에서 교토를 방문했을 때 저택으로 사용했다는 니조조(二條城)는 그다지 크지는 않았으나 특유의 우뚝 솟은 天守閣과 특히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키다노텐만구(北野天滿宮)은 교토 북쪽에 위치한 큰 사당으로 主神은 신라인이라던가... 이른 봄 매화꽃이 유명하고, 사당 내에는 사람들이 봉헌한 수백 개의 石燈이 있었다. 또 사당 둘레의 담벼락 밑에는 벼룩시장이 벌어져 가지가지 물건들을 땅바닥에 펼쳐놓고 있었고, 사당 입구에는 꼬치와 덴뿌라, 붕어빵 종류 등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죽 늘어서 있어 재미있었다.
긴가쿠지(金閣寺)는 원 이름이 긴가쿠로쿠온지(金閣鹿苑寺)였다. 빗줄기 속에 경내를 한 바퀴 돌았는데 연못 한가운데 있는 본당은 3층으로 지붕부터 전체가 금박을 입혔는지 황금빛으로 빛난다. 용마루위의 봉황새는 순금으로 만들었다고...또 재미있는 것은 입장권을 자르지 않고 주는데 세로로 기다란 부적모양이다. 집에 보관하거나 지니고 다니면 좋다던가..
14세기에 건축된 금각사는 정원이 유명한데 불교의 극락정토를 현세에 재현하였다고 하며 아기자기한 숲속 길을 돌아 나오는 산책로가 예뻤다. 이 또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일본에는 일본인들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이런 절이나 神社 또는 神宮들이 수도 없이 많다. 택시를 타고 가며 기사에게 절과 신사가 무척 많다고 했더니‘도쿄(東京)에는 도로(町:마치)가 팔백 개, 교토(京都)에는 절(寺:데라)이 팔백 개’라는 속담이 있단다. 또 신사와 신궁의 차이점을 물었더니 神社는 고승이나 학자들, 또는 조상들을 모시고, 神宮은 일본 개국신이나 황실의 가족을 모시는 것이 아니겠냐며 확실히는 모르겠다는 답변이었다.
<5> 고도(古都) 나라(奈良)의 풍광(風光)
나라(奈良)는 4세기 지방의 호족들이 힘을 합쳐 야마토(大和)정권을 수립하고 최초로 수도로 삼은 곳. 중국의 장안을 본떠 도시를 설계했다고 한다.
그 이후 불교를 받아들이고 문예를 부흥시켜 국가의 기틀을 잡는데 백제의 왕인박사는 천자문을 가져다 가르치고, 호오류사(法隆寺)를 지은 후 신라의 불교화가인 담징을 모셔 벽화를 그리게 하고, 또 백제의 아좌태자를 모셔다가는 쇼도쿠태자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백제가 멸망하자 백제인 2만 명이 이곳으로 이주해와 아스카(飛鳥)문화를 꽃피웠다던가.
처음으로 찾은 곳은 도다이지(東大寺)로 절 입구에 들어서자 수많은 사슴들이 나무밑에 누워있기도 하고 길까지 나와 관광객을 졸졸 따라다녀서 신기했다. 머리를 쓰다듬고 귀를 만져도 그저 가만히 있다. 엄청나게 넓은 경내 가는 곳마다 있으니 수백 마리는 되겠다. 관광객들이 먹이(鹿せんべい)를 주어 따라다니는데 길옆에는 먹이봉지를 파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목조건물로는 일본에서 제일 크다는 도다이지(東大寺)는 本殿 건물은 물론이려니와 절 입구의 산문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국보인 동대사 목조대불도 엄청나게 큰데 전체가 검은색이다.
재미있는 것은 대불 왼편 뒤쪽의 기둥 아래쪽에 구멍이 뚫려있는데 부처님의 콧구멍이라고도 하고 손가락 구멍이라고도 하며, 사람이 그 구멍으로 빠져나오면 무병장수한다나... 날씬한 관광객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빠져나오는데 기둥이 얼마나 굵은지 사람이 들어가면 머리와 발이 안보일 정도다.
산자락에 위치한 가스카타이샤(春日大社)는 큰 규모의 사당(祠堂)으로 서기 768년에 창건되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여기도 사람들의 염원을 비는 석등이 수도 없이 들어서 있는데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과 액수를 새긴 대리석들이 길옆에 서있다. 옛날의 오백 엔짜리부터 요즈음의 천만 엔짜리까지...이곳에는 석등(石燈)이 1800여 개, 금속등(金屬燈)이 1000여 개 있다고 한다.
높이 50m의 고주노토(五重の塔)로 유명한 고후쿠지(興福寺)는 그 밖에도 산주노토(三重の塔), 2만 여점의 중요 문화재와 공예품을 보유하고 있는 고쿠호칸(國寶館)이 유명하다.
상설 전시관에서는 국보급 문화재를 볼 수 있었는데 마침 창건 1300년을 기념하는 국보전을 큐슈(九州)에서 열고 있어 유명한 아수라(阿修羅)상은 임대중이라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다. 전시물 중 대부분은 불교관련 목조인물입상(木造人物立像)이다.
오후에 이카루카(斑鳩)지역의 레이산지(靈山寺)에서부터 산길을 따라 東明寺, 矢田寺, 松尾寺를 거쳐 호오류지(法隆寺)에 이르는 5km정도의 등산을 할 예정으로 기차와 택시를 타고 靈山寺까지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제법 빗줄기가 굵어진다. 하는 수 없이 1km정도 떨어진 암자까지 우산을 쓰고 갔다가는 돌아와 절을 둘러보았는데 등산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靈山寺는 祖師가 특이하게도 여자였는데 모셔진 불상들로 보아 중국의 道敎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황금과 백금으로 법당을 지은 黃金殿, 白金展이 있고 경내에 온천탕이 있는 것도 특이했다. 절 앞에서 산 밑을 빙 돌아 호오류지까지 버스나 기차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없어서 당황했다. 자전거를 타고가는 남학생(고등학생)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버스노선까지 보아주며 친절하게 알려주는데 결국 버스로 나라까지 다시 가야 된다고...버스에서 만난 젊은 여성은 호오류지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자기는 잘 모른다며 엄마한데 핸드폰으로 전화하여 물어보면서까지 알려주었다.
아좌태자와 담징의 혼이 서려있는 호오류지(法隆寺)는 아스카(飛鳥)시대에 지어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불교를 일으킨 쇼도쿠태자(聖德太子)에 의해 서기 670년에 지어졌다고 하니 13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셈이다. 이 절은 일본 고유수종인 히노키(檜:측백종류)로 지었다고 하는데 히노키는 잘 썩지 않는다고 하여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고 한단다.
나라(奈良)는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백제 영향인지... 길거리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너무나도 친절하고 상냥하였다. 우리 핏줄이 섞여서 그런게 아닌가 가깝게만 느껴진다. 교토와 나라는 외국 관광객이 무척 많은데 몇몇 서양 관광객에게 한국엘 가봤느냐고 물었더니 가지 않았다고... 좋은 관광꺼리가 많으니 꼭 한번 가보라고 관광 홍보도 하였다.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중의 하나는 어떤 동양인이 느닷없이 교토어원(御苑)이 어디냐고 묻는다. 마침 우리가 막 다녀오던 길이라‘이 담벼락을 따라 쭉 가다가....’하면서 보니 서양 사람을 두 명 안내하는 모양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일본인이란다. 세상에..... 내가 웃으면서‘나는 한국인이요~~~.’했더니 계면쩍은 웃음으로 어쩔 줄 몰라 한다. 한국 사람이 일본인 가이드한테 길을 알려준 셈이다. 두 외국인은 멕시코인이라는데 영어로 내가 텍사스와 뉴멕시코 여행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비록 서툴기는 하지만 젊어서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해 둔 것이 오늘날 이처럼 여행하는데 편리할 줄이야....
<6> 대도시 오사카(大阪)
오사카는 예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오갔던 일본 제2의 도시로 港口도시이자 運河의 도시이다. 우리나라 부산에서 카페리가 이곳 오사카까지 직접 오는 것도 있는데 열여덟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후쿠오카에서 부산으로 가는 오후 3시 30분 배가 예약이 되어있어 서둘러 오사카조(大阪城)만 보기로 하였다. 오사카에서 후쿠오카 하카다까지 신칸센 히카리호로 2시간 40분정도 걸린다. 나고야(名古屋)성, 구마모토(熊本)성과 함께 일본의 3대 성으로 불리는 오사카(大阪)은 규모면에서 가장 크다.
깊고 넓은 해자로 둘러싸인 성은 높은 언덕위에 늠름하게 우뚝 솟아있다. JR기차역에서 성으로 들어가려면 해자에 걸린 돌다리를 건너 구불구불 돌이 깔린 언덕길을 상당히 걸어 올라가야 한다. 성벽은 어마어마하게 큰 돌을 일정하지 않은 모양으로 깎아 교묘하게 석축을 쌓아올렸는데 페루 잉카인들 석축기술의 정교함에서는 못 미치지만 그 규모와 크기에서는 단연 앞섰다.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하여 16세기에 건축되었다는 이 성은 태평양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다는데 그 수려한 외모와 일본건물 특유의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모습은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웅장하였다.
오중탑(五重の塔) 구조의 天守閣은 오래된 목조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복원하면서 많은 부분이 철구조물로 바뀌었고, 맨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나선형의 계단이 있어 걸어서 오르내릴 수도 있다.
각 층별로 많은 유물과 사진이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촉박하여 엘리베이터로 정상까지 올랐다가 계단을 통하여 차례로 내려오면서 전시품들을 관람하였다.
일본의 城이나 절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하나같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대체로 일본인들을‘축소지향형’-작은 것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알고 있었는데 옛날의 일본인들은 지금과 달리 무엇이든 크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런 거대한 건축물들(특히 거대한 돌로 쌓은 성곽과 해자)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했을꼬..... 시간이 촉박하여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비지땀을 흘리며 역으로 와서는 도시환상선(都市環狀線)을 타고 오사카역까지 와서 다시 신오사카역까지 가야 후쿠오카행 신간센을 탈 수 있다.
관광에 정신을 빼앗긴 탓으로 가까스로 시간에 맞추었는데 신칸센이 오르고 1분도 채 안되어 출발하였다. 이 기차를 놓쳤으면 어찌할 뻔 했을까...
8박 9일간의 배낭여행을 마치며 뒤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한편 폭우로 인하여 계획하였던 후지산 등산과 아소산 등산을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 한 가지는 일본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한 끼 식사가 우리 돈으로 8천~1만 원정도인데 양이 너무 적고 반찬도 없어 평소 식사량이 많은 사람은 어렵겠다는 느낌이 들었고, 숙박비도 너무 비싸 젊은이들은 부담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에는 한국인이 하는 민박도 있는 모양인데 그것도 1인당 4만 원은 주어야 한다.
호텔도 그렇지만 민박도 사진에서 보니 돌아서기가 어려울 정도로 좁다. 그리고 교통비도 만만치 않아 가급적 JR패스를 이용하는 것이 그래도 싸다는 생각이었다. 환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버스 기본요금이 2500원 정도, 택시 기본료가 8000원 정도였다.
기차도 지역노선(Local)은 물론이려니와 신칸센은 엄청나게 비싸다. 8박 9일간의 여행경비가 대충 16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오히려 패키지로 여행하는 것이 더 쌀 수 있다. 단지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일본의 古城에서는 말을 탄 뿔 달린 괴상한 투구의 쇼군(將軍)과 깃발을 등에 꽂고 달려가는 일본의 옛 군사들 모습, 성을 공격하고 지키는 치열한 전투장면이 연상되었고, 또 어둑한 달밤,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닌자(隱者)들이 담벼락 위로 소리 없이 달려가는 모습도 연상되어 즐거웠다.
어느 곳에서나 줄서는 일본인들, 미소 띤 얼굴로 소곤소곤 작은 소리로 말하고 관광객(외국인)들에게는 자기 일을 팽개치고 직접 나서서 길을 가르쳐 주고 자신이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라도 가르쳐 주던 일본인들, 말끝마다 ‘아리가도, 스미마셍,...’
몇 년 전이던가 일본에서‘오아시스’운동이 전개되었다고 한다.
-오하요 고자이마스(안녕하세요?)
-아리가도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시쓰레이시마스(실례합니다.)
-스미마셍(미안합니다.)
우리나라의‘아나바다운동’이나‘고미안운동’도 여기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철저한 청결의식 등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국제매너라고 생각되었다.
아무튼, 일본은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된 선진국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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