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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14차 지리산 산행기 - 역사로 남기기 위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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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기 한신
댓글 0건 조회 409회 작성일 07-01-1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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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차 산행후기를 4기 이치호선배님께서 쓰신 글을 우리 재경산악회의 역사로 남기기 위하여 옮겨 싣습니다.
워낙 수려한 글이라 시간이 조금 지났어도 다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하 댓글까지 그대로 옮깁니다.

지리산 산행유감 / 3색(色)의 가을에 빠지다 - 4기 이치호

*연곡사의 가을 _ 피아골 직전마을 2006년11월11일

<11월10일 밤 10시 양재역>

행여 염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리산이라는 이름 하나로 겁(?) 먹은 것은 아닌지..
예약인원에서도 8명이나 빠진 18명.
오르막 길보다는 내리막으로 코스를 잡았는데도 이름이 주는 위용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까. 가고 싶어도 일상 때문에 못 가는 동문들이 더 많다는 것을 위안으로 하고 1시간 늦게(출장 갔다가 참석하는 열정의 후배를 위해) 28인석의 넉넉한 공간이 있는 버스는 출발을 했다.
이 코스를 제안하고 동의를 받은 죄(?)로 산행코스를 카피하여 나눠주었다. 사실 내리막 코스가 만만치 않음을 지리산의 경험상 알고 있었지만, 첫 지리산을 가는 동문들을 위해 힘들지 않음을 강조했다. 좀 미안했지만 그것이 초행하는 사람에게는 필요할 것 같아서...
그리고 누군지 모르지만(다 알지만 그냥) 준비해온 돼지족발을 안주로 한 잔씩 하기로 했는데, 건강을 염려하는 모 임원의 배려(?)로 술은 입가에 스쳤다가 지나가고 말았다.
비가 오고 눈도 온다는 예보로 아이젠까지 챙겼다. 결국 믿지 않겠다던 기상청의 예보를 혹시나 하며 믿었던 내가 또 바보였다.
버스는 11일 새벽 4시 구례읍내 해장국집에 도착, 모두들 해장국 한 그릇씩 비웠다. 하늘에는 구름에 들락거리지만 분명 달이 있었다. 예정대로 노고단에서의 일출을 보기 위해 곧바로 성삼재로 출발을 했다.

<지리산의 3색(色) 가을에 빠지다>

_ 색 하나, ‘바람’ _

성삼재에 부는 지리산의 바람은 장난이 아니었다.
모두는 옷깃을 여미고 바람 속으로 걷기 시작했다.
곧 땀이 났다. 머리는 냉랭한데 방한복의 기능이 좋은 탓에 몸은 덥고 답답해진다. 돌길과 시멘트가 혼합된 언덕길을 오른다.
왜 이런 곳에 시멘트 포장을 할까? 노고단까지는 1시간 남짓. 대피소에서 잠깐 쉬고 노고단에 올랐다. 6시45분경.
노고단의 노고(老姑)라는 이름은 도교에서부터 유래된 말. 할미라는 뜻이 있다. 국모신인 서술성모를 모시고 해마다 국운의 번창과 안녕을 위해 제사를 올렸다. 그래서 정상에는 돌로 쌓은 단이 있다.
이곳엔 여름이면 원추리꽃이 장관이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기후의 영향으로 운해가 장관이며, 그 사이로 올라오는 멀리 천왕봉의 일출 또한 걸출하다.
예부터 지리산에서 천왕봉으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려면 3대의 공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행운이 있었는지, 98년도 여름에 입대를 앞둔 아들과 사진동호회원 4명이 종주를 하면서 촛대봉에서 운해를 박차고 오르는 일출을 보는 장관을 경험했다. 그것도 지리산을 기웃거리기 몇 번의 노고를 하고 난 후였다.
개인적으로 내가 지리산을 처음 만난 것은 83년, 천왕봉 등반이었다.
해발 1,917미터의 높은 산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온 힘을 다해 산을 올랐다가 내려갔기에 지리산이 어떻게 생긴지도 몰랐다. 그때 등산은 단순 오르내림보다는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또한 산이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속살을 아무에게나, 어느 때나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도 나는 지리산에서 깨달았다.
그 후 왕시루봉이며, 반야봉이며, 뱀사골, 칠불사 계곡, 반선계곡 등등 주변을 사진을 찍으러, 또는 등산을 하며 기웃거린 다음에야 그나마 일출을 한 번 제대로 본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 같은 지리산의 따뜻한 품을, 장대한 능선의 웅장함을, 시시각각 변하는 기후와 그 안에 감춰진 신비한 풍경을, 수목 사이사이 피어있는 야생화의 자태를, 계곡마다 숨어있는 태고의 자연미를 찾아 다닌 수고가 있은 다음에 비로소 지리산이 준 선물이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동문들에게 ‘운이 좋으면 일출을 볼 것이며, 계곡에 내린 운해를 만나면 탄성을 지를 것이다’며 오르기 전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었다. 모두는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가히 짐작을 한다.
그런데, 노고단의 정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천왕봉이 있는 동쪽 하늘엔 그름이 끼었고, 운해가 앉아있어야 할 골짜기에는 일진광풍이 무당춤을 추고 있었다. 괜히 미안했다. 바람만 집어넣은 인과인지, 정말 바람만 노고단을 공격하고 있었다.
내겐 그 바람도 그리움의 하나였다. 그래도 말은 못하고 속으로 중얼대고 있었다.
“지리산이 그리 만만하지 않지. 어찌 한 번에 다 보려고 하남? ㅋㅋ 가슴에 울컥하는 느낌 하나 새겨질 때라야 속살을 보일 걸!”
이미 잎새가 진 노고단의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은 겨울을 환영하듯 춤추고 있었다. 나는 그 바람의 형상을 보고 있었다. 대단한 모습의 바람이었다.
옛 시인이 노래했다.
‘수정풍체태(樹呈風體態) 파롱월정신(波弄月精神)’
온몸에 바람을 흠뻑 뒤집어쓰고 우리는 임걸령을 향해 발을 옮겼다.
비탈길로 된 길.. 시골에서 흔히 만나는 오솔길과 같은 길을 따라 걷는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아침노을이 붉게 물들어 온다.
돼지 등처럼 넓다고 해서 생긴 이름 돼지평전. 98년 종주 때 이곳 어딘가에 큰거름(?)을 준 기억이 있는 곳…ㅎㅎ. 바람이 좀 수그러들었다.
임걸령까지는 노고단에서 한 시간 남짓. 지리산 능선에서는 제일 물맛이 좋다는 샘이 있다. 지리산의 특징 중에 하나는 산 정상부에 샘이 많아 종주를 하는 등산객들에게 감로수를 제공한다는 것.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다.
그것도 피아골 대피소까지는 급경사에 가깝다. 용케도 이때부터 바람은 우리 곁을 떠났다. 그 대신 약 올리는 듯이 하늘은 구름 한 점도 보이질 않는다. 노고단의 하늘이 저랬으면 일출을 보는건데…….

_색 둘, ‘빛’ _

바람 사라진 곳에 빛이 있었다.
높은 곳엔 말라 비뚤어진 빛이지만, 내려갈수록 밝아지기 시작한다.
햇빛은 투명하고, 노랗고 붉고, 갈색의 빛들이 그나마 잊어버린 계절을 기억하게 한다.
사람들은 가을 산에 오면 온통 붉게 물든 단풍만 찾지만, 나는 그 안에서 다른 빛을 찾는다. 노랗기도 하고 주황색 같기도 하고 검은색이기도 한 그 빛이 가을에는 있다.
나뭇가지 틈새로 날아든 햇빛은 잎새 위에서 반사하고, 노란잎을 통과할 때는 노란색으로 땅에 떨어진다. 붉은 입을 통과할 때면 주황색이 되어 피곤한 등산객의 발끝을 간지럽게 한다. 투영할 수 없으면 어두운 그대로의 그림자로 빛의 모습을 보인다.
해서, 빛과 어둠은 다름이 아닌 같은 것임을 자연을 그렇게 보여준다. 가을만이 주는 특유한 그 빛을 금년에 나는 피아골에서 만났고, 그 빛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산하는 길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도 큰 산이 갖는 특징이다. 그래도 여기는 약과다.
한 번은 세석평전에서 쌍계사로 내려오는데 아침 9시에 출발하여 오후 3시에 도착한 적도 있었다.
피아골 대피소에 닿기 전, 우리는 한 가지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다.
먹는 것, 마시는 것, 그리고 떠들고 웃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으로 하여 기분이 좋아져 행복하다는 생각…….
약식과 김밥, 계란, 과자, 과일, 떡 등등.. 그리고 버스에서 모자란다고 난리를 부릴 때도 시침을 떼더니 막걸리도 있었다.
아침에 산 소주와 머루주… 산에서 먹는 맛만큼 더 맛있는 것이 있을까.
자연에서 나왔으니 자연과 하나되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따질 것 없다.
산에서는 산과 하나가 되고, 세상에서는 세상과 하나가 되면 된다. 산에 와서 세상 일 걱정하면 그게 멍청인지를 모른다.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힘들 정도는 아니지만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간간이 오랜만에 갖고 간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람들은 가을 풍경을 찍는 줄 알지만 나는 경치 외에도 빛 하나를 더 담고 있었다.

_ 색 셋, ‘소리’ _

소리가 있었다.
바람과 빛도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고, 이 소리 또한 그렇다.
나는 안다. 같은 바람과 빛과 소리라 하더라도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을…….
그래서 절대적인 주관적 시각과 감각으로 나는 지리산의 바람과 빛과 소리를 참 오랜만에 만났고, 그런 반가움에서 지난 시간의 기억을 반추하며 피아골을 내려오고 있었다.
계절을 보는, 또는 자연을 보는 사람들의 느낌은 모두 같을 것이고, 다르다면 느끼는 깊이의 정도에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지리산의 소리는 바람에서 시작했다. 노고단을 오를 때는 겁탈하려는 처녀의 치마 찢어지는 소리로 내 귓전을 스쳤다. 노고단에서는 박수무당의 북소리로 준령을 넘어오고 있었다.
피아골을 내려오면서 소리는 내 발바닥을 간지럽히며 키득대고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형체로 수도 셀 수 없는 발길질에 차이고 밟히면서 뭐 그렇게 항변하려는지, 부서지는 순간까지도 소리를 토하고 있었다.
그 소리에 어느 누구도 동정하거나, 귀 기울이거나 하지 않는데도……. 아니 그 소리가 가을을 탐미하는 당연한 반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소리는 다시 계곡에서 들렸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구슬소리를 내며 가을을 나르고 있었다.
피아골 아니 지리산의 가을은 이미 물에 빠졌다. 이 물이 섬진강을 지나 바다에 들면, 아마 이곳에는 겨울이란 놈이 눈썹만큼의 자태를 보이리라.
여자의 발끝까지 탐미해야 직성이 풀리는 절대적 탐미주의자라며 가을의 깊은 맛은 11월에 있음도 알아야 한다. 기후 관계로 세상의 단풍이 어떻다고 해도 가을은, 욕정을 참지 못하는 여자의 드러난 치부처럼 11월의 지리산 피아골에서 촉촉하고 뜨겁고 아름답게 타고 있었다.
그 11월의 가을 속살을 음흉스럽게 탐미하며 내려오는데 마치 낙엽 태우는 것과 다르지 않는 냄새가 또 다른 의식을 깨운다.
그리고 나뭇가지 틈새를 비집고 나와 떨어진 빛에 노출되면서 나는 따뜻하다는 생각을 한다.
만추의 따뜻함은 꼭 온도 때문만은 아니다.
바람과 빛과 소리 속에 숨어있는 섭리가 나를 따뜻하게 한다.
나뭇잎의 일생은 인간의 생로병사와 다르지 않다. 봄에는 새싹으로 존재를 알리고, 여름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빛을 이용하여 양분을 만들어 나무의 생존을 책임진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지니고 있던 독기를 내뿜어 스스로의 생을 접는다. 절정의 단풍이 그 색깔을 바래기 시작하면 타는 냄새가 나는데, 얼마나 스스로의 속을 태웠기에 불로 낙엽을 태우는 냄새와 같을까.
가을에 낙엽이 지는 것은, 겨울에는 나무의 뿌리가 수분을 흡수하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잎으로 나가는 수분의 증발을 막고 추운 겨울 동안 몸체인 나무를 살리려는 것.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끝났을 때 잎은 스스로 떨어지고, 가야 할 때가 되었기에 떨어진다.
낙엽은 아주 지혜롭다.
떨어지기 전에 잎이 달렸던 자리에 ‘떨켜’ 라는 것을 만든다. 잎이 떨어진 자리로 병균의 침입을 방지하고, 수분이나 양분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보호막을 치는 것이다.
낙엽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자신이 할 일을 다 한 뒤, 나무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기꺼이 떨어지는 추락에 있는 것이다.
이 살신성인적인 잎새의 생을 알아야 진정한 가을의 정취, 낙엽 지는 11월의 가을이 따뜻하고 탐미할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임걸령에서 피아골 입구인 직전마을까지 약 4시간의 발품을 팔았다. 그 끝자락엔 신라시대의 창건역사를 지닌 연곡사라는 절이 있었다. 가을이 한창이었다. 버스에 오르기 전, 지리산을 돌아보며 한마디 물었다.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 모든 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인가? -
사실 이 질문은 스스로에게 던진 것이었다. 언제까지인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아마 지리산은 이 문제의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스스로 풀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냥 묵묵부답으로 그 자리에서 내려보고 있을 것이다.
행여 인연이 있어 언젠가 이 화두(話頭)를 풀고 다시 지리산에 올 수 있다면….
그때 나는 지리산이 될 것이다.
노고단엘 가면 노고단이 되고,
천왕봉엘 오르면 천왕봉이 되고,
피아골에 오면 피아골이 되고,
낙엽을 보면 낙엽이 되고,
계곡을 보면 계곡수가 되어 흐를 것이다.

<에필로그>

점심을 먹기 위해 산수유마을로 안내를 했다. 그리고 재첩국으로 점심을 하면서 지역 생산품인 소주 ‘잎새주’를 마시자고 했다.
‘처음처럼’은 없는 곳.. 관광지의 것을 애용하는 것도 도리라는 강변으로 ‘잎새주’를 고집했지만. 실은 그 이름으로 지리산행의 마무리를 취하고 싶었다.
동행했던 2기 선길영 선배님(유일한 선배), 동기인 조규호 회장과 김재형 4기 회장, 그리고 후배님들……. 맛있는 음식을 갖고 오기도 했고, 특히 34기 막내 후배. 그 후배가 우리 나이에 이 등산회에 있다면, 그때 우리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며 웃기도 했다.
그때까지 재경 강릉고산악회가 발전하고 유지되기를 바라며…….
모두 고맙고,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사진을 함께 올리면 좋은데 우리 홈피는 그런 기능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사진 몇 장을 재경산악회 동아리에 올렸습니다. 보시기를……..





[19기 한신]

시와 소설과 수채화와 사진을 동시에 보는 듯한 선배님의 산행기를
읽으며 함께 걸었던 지리산의 바람과 빛과 소리를 생각했습니다.
그저 생각없이 다녀온 제가 부끄러웠고 이제 누가 산행기를 쓸 수
있을까 걱정도 됩니다.
선배님!
아름다운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2006-11-17 17:39:36]


[24기 김원하]

선배님께 산행후기 부탁드리길 너무잘 한것 같습니다.
아마 곧 등단(?) 하시는것 아닌지요??
정말 잘읽었고, 마치 노고단에 다시 서 있는것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동아리방(재경산악회)의 게시판에 회비 사용내역을 올려놓았습니다.. [2006-11-17 17:40:12]


[심종영]

함께 하지 못해서 너무 아쉽습니다.
2년전 지리산 종주때 써리봉에서 평생 한번도 보기 어렵다는 브로캔도 보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피아골 하산길이 만만치 않았지요?
언제또 갈까요? [2006-11-18 00:10:22]


[황동학]

회원 여러분 선배님 덕분에 산행 너무 자~~~알 했슴니다. [2006-11-18 08:47:05]


[최보헌]

지리산, 모처럼의 기회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의 벽을 깨뜨리지 못해 아쉬웠는데 그림처럼 음악처럼 펼쳐놓은 선배님의 글을 보니 헬렌켈러의 말이 생각나네요...겁탈하려는 처녀의 치마 찢어지는 소리는 어떤 느낌일까...그 하나가 어디일까에 대한 답은 우리의 고유경전인 천부경, 참전계경, 삼일신고를 읽어보면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을꺼라는 생각도 해봅니다...중요한 것은 다음에 기회가 생길 때 열일 제쳐놓고 갈 수 있는 용기이겠죠...모두들 보고 싶습니다.. [2006-11-18 10:16:10]


[6기 김인황]

산행지도 추천하시고 안내도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산행 후기 잘 읽었습니다.
역시 글 하면 선배님이십니다.
그런데,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바쁜 세상에 소설을 쓰셨다는 점 입니다.(전화로도 말씀 드렸지만 절대 진담은 아닙니다)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내내 건강 하십시요 ! [2006-11-20 19: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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