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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1)

작성자 백충기

등록일 2020.06.30

조회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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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


<안달루시아 지방의 지형>
2019년 남유럽 50일간 여행 중 스페인을 20일 동안 여행하고 비교적 자세하게 여행기를 썼는데 특히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에 대해서 좀 더 써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유럽 역사, 아니 세계 문화사의 한 페이지를 큼지막하게 장식한 스페인은 여행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는데 특히 스페인 최남단지방인 안달루시아는 숱한 문명들이 거쳐 간 곳이라 곳곳에 다양한 문화의 자취들을 만날 수 있음은 물론이려니와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는 건축물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어 스페인이 한때 얼마나 부유한 국가였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지도에서처럼 스페인의 행정구역은 15개 지방과 대서양 상의 섬들인 카나리아 제도(諸島/Canary Islands)와 지중해에 있는 발레아레스 제도(諸島/ Balearic Islands)로 나뉜다.
스페인은 각 지방마다 다시 작은 자치주들로 나뉘는데 안달루시아 지방을 살펴보면 먼저 주도(州都)인 세비야(Sevilla)를 비롯하여 그라나다(Granada), 말라가(Malaga), 알메리아(Almeria), 우엘바(Huelva), 카디스(Cádiz), 코르도바(Córdoba), 하엔(Jaen)의 8개 자치주로 나뉘어져 있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역사 고찰>
스페인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면 기원전 11세기에는 페니키아인, 뒤를 이어 카르타고가 지배하게 되며 BC 4세기,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인 포에니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하자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다. AD 5세기에는 반달왕국, 뒤를 이어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Visigoth) 왕국, AD 7세기에는 비잔틴(Byzantine) 제국이 점령한다. AD 5~6세기 북아프리카에 왕국을 세웠던 반달족(Vandal)은 무자비하게 가톨릭을 공격하고 파괴한 반가톨릭 세력으로, 신성모독을 뜻하는 반달리즘(Vandalism)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스페인은 AD 8세기 들어 사라센(Saracens/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AD 13~4세기에 들어 이슬람세력을 대부분 몰아내는 등 스페인은 수많은 종족들이 영토분쟁을 일으키던 역사의 현장인데 그 중심지역이 이베리아(Iberia)반도 남단인 바로 이곳 안달루시아지방이다.
AD 15세기 들어 스페인은 4개의 왕국으로 쪼개져 독립하는데 나바라(Navarra), 카스티야(Castilla), 아라곤(Aragon) 그리고 이곳 안달루시아지방의 이슬람국가인 그라나다(Granada) 왕국이다. 그러나 아라곤의 왕자 페르난도와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공주가 결혼하고 두 왕국이 합치면서 1492년 이슬람세력의 마지막 근거지였던 그라나다 왕국을 함락하고 마침내 스페인에서 이슬람세력을 말끔히 몰아내게 된다.
15세기 말, 이사벨여왕은 콜럼버스와 계약을 체결(산타페 협약)하고 배 세척을 대어주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 등 대항해시대의 막을 열었고,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 어마어마한 식민지를 거느리는 엄청난 강대국으로 발돋움한다.
AD 16세기 초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1세가 스페인의 왕위를 계승하고 AD 18세기에 들어서면서 합스부르크가는 막을 내리고 부르봉왕가의 펠리페 2세가 왕위를 계승....
엄청난 경제력을 앞세워 세계를 지배하던 스페인도 1898년 중남미 식민지 쟁탈전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함으로 아메리카대륙의 식민지를 대부분 잃는다.
 

<안달루시아의 주기(州旗)와 문장(紋章)>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안달루시아의 주기는 가로로 삼등분하여 짙은 녹색의 두 간 사이의 흰 부분에 안달루시아 문장(紋章)이 그려져 있는 깃발이다.
안달루시아 문장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허큘리스/Hercules)가 사자 두 마리를 쓰다듬고 있는 그림인데 지브롤터(Gibraltar)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모로코와 마주보고 있는 안달루시아는 타리파(Tarifa) 항구 부근에 헤라클레스 기둥(Pillars of Hercules)이 있는데 용맹의 상징인 헤라클레스의 그림을 주의 문장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문장 그림의 위와 아래에는 라틴어로 지배자이자 창조주인 헤라클레스라고 씌어져 있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들>
(1) 주도(州都) 세비야(Sevilla)
세비야(Sevilla)는 안달루시아의 주도로 내륙에 위치한 오랜 역사의 고대도시로 과달키비르(Guadalquivir) 강가에 세워진 내륙 항구도시인데 신석기 때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이며 AD 8세기, 이슬람 지배시기에 수도로 정해진 세비야는 훗날 신세계 탐험의 중심인물들이었던 콜럼버스, 마젤란 등 탐험가들이 첫 항해를 시작한 출발점이기도 했던 역사적 도시이다.
세비야는 BC 4세기 로마의 지배를 받을 때에는 히스팔리스(Híspălis)로, 또 세빌(Seville)이라고도 불렀으며, 이탈리아의 작곡가 로시니(Rossini)가 작곡한 너무나 유명한 코미디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의 세빌리아(Seviglia)도 세비야를 일컫는 말이다.
콜럼버스에 의해 신대륙이 발견되고 난 이후 엄청난 금은보화가 세비야를 통해 스페인으로 들어왔고 이로 인해 식민 지배를 받던 스페인은 오히려 광대한 식민지를 거느리는 강대국으로 변모하여 번영을 구가하게 되는데 모든 것이 스페인 통일의 어머니로 추앙받는 이사벨 여왕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비야의 인구는 200만 정도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에 이어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 세비야 대성당과 히랄다(Giralda) 탑

세비야 대성당은 12세기 무슬림 사원이었던 건물을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했는데 1403년에 시작하여 1506년에야 완성했다니 105년이나 걸려 완공된 성당이다. 그러나 17~8세기 들어와 르네상스, 바로크 건축양식이 가미되어 증축되면서 원래의 이슬람 건축양식과 어우러져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물이라고 한다.
세비야 성당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성당의 종탑인 히랄다(Giralda)탑이다. 히랄다탑은 원래 이슬람사원에서 하루 다섯 번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Adhan)을 외치던 첨탑 미나레트(Minaret)였는데 성당의 종탑으로 개조하면서 정상에 여인이 바람개비를 잡고 있는 풍향계를 설치했다.
미나레트 정상의 돔(Dome)을 떼어내고 종루(鐘樓)를 설치하여 28개의 종과 가톨릭 신앙을 상징하는 여성상을 세워 풍향계 역할을 하게 했다고 하며, 1568년에야 오늘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스페인어로 히랄다는 풍향계라는 뜻이며 이 히랄다탑이 세비야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세비야 대성당은 바티칸의 성 바오로 성당, 영국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 크기라고 하는데 크기뿐만 아니라 그 아기자기한 건축미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 콜럼버스의 관
세비야성당 박물관에 들어서면 화려한 가지가지 장식품들과 성물들로 눈이 어지러운데 그 가운데 특히 사람들 이목(耳目)을 끄는 것이 왕관을 쓴 네 사람이 콜럼버스의 관을 어깨에 메고 있는 조형물이다. 이 콜럼버스의 관(棺)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어 조금 덧붙여 이야기해 본다.
이사벨 여왕의 후원으로 배 세 척과 선원들, 그리고 식량을 지원받은 콜럼버스는 금과 진주, 그리고 향료가 무진장이라는 인도(India)를 향해 대 항해를 시작하는데 그가 탔던 배가 산타마리아(Santa Maria)호다.
당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등의 과학자들에 의해 지동설이 처음으로 제기되고 지구는 둥글다는 이론이 나오자 모두들 반신반의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지구는 평평하고 땅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멀리 나가면 폭포처럼 공중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서 근해에서만 고기를 잡거나 항해를 하고 먼 바다는 두려워서 나가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중국에서는 커다란 지각판(地殼板)을 네 마리의 거북이 받치고 있는데 이따금 거북이들이 꿈틀거리면 지진이 일어난다는... ㅎㅎ
당시 모험가들은 동쪽으로 동쪽으로... 사막을 지나고 산맥을 넘어 무작정 갔더니... 인도라는 나라가 나타났는데 밀림 속에 황금으로 된 도시가 있고 코가 긴 코끼리라는 짐승이 있고, 사막근처 바위 밑에 샘물이 있어 목이 말라 마시려고 했더니 냄새가 나서 마실 수 없었다. 낙타도 못 마셨는데 불을 붙이니 불이 붙었다(원유)....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들 거짓말쟁이, 허풍쟁이라고 하던 시절이었다.

코를 손처럼 사용하는 동물이라구?, 샘물에 불이 붙다니.... 말 같지도 않은 말을... ㅎㅎ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니까 동쪽으로 가지 말고 서쪽 바다(대서양)로 배로가면 훨씬 더 빨리 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돈 많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나에게 배를 대어 달라. 나는 서쪽 바다로 인도를 가겠다. 인도는 황금도시도 있고 진주와 향료가 무진장이라고 하니 한 번만 다녀오면 그 몇 배로 갚아 주겠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콜럼버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고 모두들 정신 이상자로 취급했다.
콜럼버스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스페인 여왕 이사벨을 찾아가서 배를 대어줄 것을 요청하는데 이사벨 여왕은 자신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패물까지 처분하여 콜럼버스에게 배를 세척 대어주고 계약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산타페 협약(Santa Fe Capitulations)이며, 이른바 벤처 투자였던 셈이다.
산타페 협약은 무슬림 국가인 그라나다가 함락된 몇 개월 후인 1492년 4월에 체결하는데 협약의 내용은 콜럼버스가 앞으로 발견되는 지역의 대제독과 식민지 총독은 스페인 왕가의 칭호를 부여하고, 이러한 직위들이 그의 자손들에게 영구히 상속되며, 그 곳에서 산출된 모든 귀금속의 10분의 1을 콜럼버스가 소유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 산타페 협약 체결모습의 동상이 그라나다(Granada) 대 성당 앞 광장인 ‘이사벨 라 까톨리카 광장(Plaza Isabel la Catorica)’ 가운데 있다.
항해를 떠나 70일 만에 미국대륙 앞 바하마 제도의 작은 섬에 첫 발을 디딘 콜럼버스 일행은 그곳이 인도인줄 알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인도사람이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인디오(Indio)라 불렀는데 영어로 하면 인디언(Indian)이다.
콜럼버스가 첫 발을 디딘 곳은 바하마제도의 쿠바 북쪽에 있는 작은 섬인 구아나아니(Guanahani) 섬이었는데 이름을 ‘구세주’라는 뜻의 산살바도르(San Salvador)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미국 앞의 바하마제도를 ‘서인도제도(西印度諸島)’라 부르고, 미국 원주민을 인도사람들이라는 뜻의 인디언(Indian), 중남미 원주민을 같은 의미의 스페인어 인디오(Indio)로 부른다. 그리고 동양의 진짜 인도(印度/India)는 ‘동인도(東印度)’라고... ㅎ
그러나 첫 항해에서 금과 향신료를 얻지 못하고 돌아오자 이사벨은 크게 실망하고 콜럼버스에게 냉랭하게 대했던 모양이다. 그는 그 후로도 세 차례 더 신대륙을 다녀왔지만 세 번째 항해에서 총독 지위는 물론이고 그동안 신세계에서 얻었던 모든 재산을 잃고 죄인 취급을 받으며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그가 마지막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며칠 후 이사벨 여왕이 죽었고, 콜럼버스도 2년 뒤 바야돌리드에서 숨을 거뒀는데 스페인에 서운한 감정을 가졌던 그는 자신이 죽으면 ‘절대로 스페인 땅에 묻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결국 자신이 발견한 쿠바에 묻혔다고 한다. 그러나 스페인은 훗날 그들에게 엄청난 부와 영광을 가져다 준 콜럼버스를 기리기 위하여 콜럼버스의 시신을 스페인으로 모셔오는데 그의 유언을 거스를 수 없어 땅에 묻지 못하고 세비야 성당에 모시면서 지금처럼 공중에 붕~ 떠 있게 설계하고 스페인의 네 명의 왕이 관을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설계하여 최고의 존경을 나타냈다고 한다.
콜럼버스 사후, 멕시코에서 아즈텍(Aztec) 제국을 무너뜨린 코르테스(Hernán Cortés), 남미에서 잉카(Inca) 제국을 멸망시킨 피사로(Gonzalo Pizarro)로 대변되는 정복자, 탐험가들의 활약으로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쌓게 되는데 이야기의 발단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더불어 황금도시 엘도라도(El Dorado)의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엘도라도(El Dorado)는 결국 허구의 이상향으로 밝혀졌지만 콜롬비아의 산간오지 어디가 아닌가하는 추측으로 수많은 탐험가들이 찾아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볼리바르 광장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황금박물관(Museo del Oro)이 있는데 이 박물관에는 이 지역에서 출토된 수많은 황금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엄청난 양과 아름다운 세공기술을 보면 정말 이곳 어디쯤에 엘도라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전설 속의 엘도라도는 도시의 모든 건물이 황금으로 되어있으며 길바닥도 황금으로 깔았다고 한다. 또 축제 때가 되면 제사장들은 벌거벗은 온 몸에 금가루를 칠하고 황금 마스크를 쓰고 제사를 지낸 후 신전 앞 호수에 들어가 금가루를 씻어내는데 축제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가지가지 금붙이를 가지고 왔다가 호수에 던진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황금도시로 꿈의 도시요, 이상향이었다.
그러나 추측컨대 멕시코,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엄청난 양의 금을 약탈해 유럽으로 가지고 가자 사람들이 어떻게 이 많은 금붙이와 보석을 구했는지 묻자 차마 약탈했다는 말은 못하고 엘도라도(El Dorado)라는 황금도시가 있는데 황금이 무진장이라 그냥 주워올 정도... 어쩌구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멕시코에 있던 아즈텍(Aztec) 제국을 무너뜨린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즈(Cortes)는 아즈텍의 마지막 왕이었던 쿠아우테목(Cuauhtemok)을 인질로 삼고 그의 방에 황금을 가득 채우면 왕을 살려주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아즈텍 사람들은 황금을 가지고와서 방에 가득 채우고 석방할 것을 탄원하지만 결국 왕을 죽여 버리고 마는 만행을 저지른다.
재미있는 것은 남미의 콜롬비아(Colombia)는 탐험가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을 지었다.
또, 콜럼버스(1451~1506)가 조금 서운할 일은 그가 발견한 신대륙의 이름을 첫 번째 탐험가였던 자신의 이름을 따지 않고 후배 탐험가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1454~1512)의 이름에서 따서 아메리카(America)라고 하였으니 억울한 일이겠다.


♣ 알카사르(Alcázar) 성채와 플라멩코(Flamenco)

세비야의 또 다른 자랑꺼리의 하나는 관광객들이 항상 표를 사기위해 장사진을 이루는 곳으로 알카사르성채(城砦)가 있다. 알카사르(Alcázar)는 스페인어로 성(城)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궁전은 12세기 후반 이슬람인들이 세운 성채라고 하는데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의 것은 14세기 페드로 1세가 건설한 ‘페드로 궁전’이라고 한다. 스페인 특유의 이슬람 양식인 무데하르(Mudejar)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로 알려졌고,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과 비슷한 채색 타일 장식과 격자(格子) 천정, 패티오(Patio/안 뜰) 등이 유명하며 항상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아기자기한 아라베스크 문양이 새겨진 아치형 문과 건물 가운데 패티오가 있는 제법 아름다운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의 이름이 ‘소녀의 중정(中庭)’이라고 하며 좀 서글픈 사연이 있다. 이슬람 무어족들이 이 지역을 점령했을 때 매년 스페인 소녀 100명을 시녀로 바치라고 했다고 한다.기하학적으로 꾸며진 아담한 정원은 모양부터 너무나 아름답고 가지가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데 내 허리보다 낮은 난쟁이 무화과나무에는 탐스런 무화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또, 예전에는 수영장이나 목욕탕으로 사용했었던 듯 작은 풀장도 있는데 오래된 돌계단이 매력적이다. 또 좁은 통로를 따라 성벽 위로 오르면 좁은 전망대가 있고 도시 일각이 내려다보인다.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단어 플라멩코(Flamenco)!!
플라멩코는 사실 춤이라는 뜻이 아니라 ‘공연예술’을 말하는 것으로 플라멩코(Flamenco)라는 이름은 불꽃, 열정이라는 의미의 플라마(Flama)에서 왔다는 설, 또는 붉은 홍학 플라밍고(Flamingo)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 플라멩코의 발상지가 바로 이곳 세비야(Sevilla)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주인에게 플라멩코 공연을 하는 곳을 물어보았더니 가까운 곳에 정통 플라멩코 공연장이 있다며 약도를 그려주는데 ‘Casa de la Memoria(추억의 집)’으로 저녁 7시 30분 공연이란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공연장으로 찾아갔는데 공연은 조그만 무대 앞에 3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관람석이 있는 조촐한 공연장인데 이미 발 들여 놓을 틈조차 없이 관객들이 들이차 있다. 그러나 용케도 가운데쯤에 빈 좌석이 있어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 되고난 후 완전히 플라멩코 춤과 음악에 빠져들고 말았다. 공연하는 예술인은 딱 4명으로 처음에는 무대와 출연자 인원을 보고 조금 실망 했었는데... 완전히 최정상급 기능보유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멩코는 춤(Baile), 기타(Toque), 노래(Cante), 손뼉과 추임새(Jaleo)의 4 가지로 구성되는데 춤이 남녀 2명, 기타 1명, 노래 1명으로 모두 4명이 공연하는데도 완전히 청중을 압도한다.
화려한 의상도 아니고, 과도한 몸짓도 아닌, 절제된 동작과 춤, 노래, 기타반주가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어 공연하는 내내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가슴을 쥐어뜯는, 피를 토하는 듯 비장한 어조의 노래, 온몸이 부서질 듯 강렬하면서도 절제된 동작의 몸짓, 현란한 발 구르기와 손가락 튕기기(캐스터네츠), 그리고 박력이 넘치는 발 구르기와 리드미컬한 박수, 거기에 신들린 듯 얹어지는 현란한 기타선율과의 완벽한 조화는 청중의 숨을 멈추게 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한다. 약 1시간 30분 정도의 공연이 끝나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멈출 줄 모른다. 공연 중에는 일체 사진촬영이 금지이고 공연이 끝난 후 잠시 사진촬영이 허락된다.
몇 번 길거리에서 녹음에 맞추어 플라멩코를 추는 소녀들을 보았는데 전연 차원이 다르다. 그네들은 푼돈을 벌기 위해 어설픈 흉내만 내고 있었다는....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 바로 옆의 자그마한 방은 플라멩코 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는데 주로 포스터와 무대 의상들이다. 숙소 주인 말대로 정통 플라멩코를 감상할 수 있어서 매우 만족... 나의 오랜 숙원을 풀었다.


♣ 황금탑(Torre del Oro)
세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관광명소로 황금탑(黃金塔:Torre del Oro)이 있다.
이 황금탑은 시내 가운데를 관통하며 흐르는 과달키비르(Guadalquivir) 강가에 있는 자그마한 탑인데 AD 13세기 초 이슬람인들이 과달키비르 강(江)을 통과하는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웠다고 하며, 강 건너편에는 은의 탑이 있어서 두 탑을 쇠사슬로 연결하여 세비야에 들어오는 모든 배를 막고 검문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황금탑만 있다. 황금탑이라는 이름은 처음 탑을 세울 때 금 타일로 탑의 외부를 덮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16~17세기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을 이곳 지하창고에 보관하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느 것이 사실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또, 이곳은 콜럼버스(Columbus)의 신대륙 항해의 시작점이며, 마젤란(Magellan)이 세계 일주를 위한 항해를 떠났다고 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 은의 탑은 없지만 조금 떨어져 건설한 다리를 건너가면 고만한 탑이 또 하나 있는데 올라가면 주변이 한눈에 보이고 두 탑 내부는 역사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다.


♣ 스페인 광장
세비야의 볼거리로 스페인 광장을 빼 놓을 수 없다.

처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겸 덜렁덜렁 갔는데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마치 왕궁처럼 반달형으로 지어진 건물은 수없이 많은 아치가 있고 그 뒤는 끝없는 회랑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한쪽에는 뾰족한 첨탑이 당당히 솟아있는 성당이 있고 건물 앞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작은 수로를 만들어 관광객들은 보트를 타고 한가하게 물놀이를 즐긴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1929년에 열린 에스파냐­아메리카 박람회장인데 건축가 곤잘레스(Aníbal González)가 건축했다고 한다. 또 광장 쪽 건물의 아치 밑 벽면에는 스페인 각 지역의 역사적 사건들을 타일 모자이크로 묘사하여 붙여 놓았는데 볼만하다. 건물 앞의 광장 한가운데는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대는 분수도 인상적이지만 광장은 그냥 텅 비어있고 나무그늘 하나 없어서 더운 여름철이면 땀깨나 흘려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정문을 나서면 상당히 넓은 수목의 공원지대로 많은 사람들이 그늘 밑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한가롭다.


♣ 세비야 시청사
세비야 도심 누에바 광장(Plaza Nueva)에 있는 세비야 시청사(市廳舍)는 스페인의 플래터레스크(Plateresque) 건축의 거장이었던 건축가 리아뇨(Diego de Riaño)가 15세기 말에 건축을 시작해 16세기에 완성한 유서 깊은 시청사로, 에스파냐에서 대표적인 플래터레스크 양식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플래터레스크(Plateresque)는 원래 은세공을 뜻하는 단어로 16세기에 스페인에서 유행한 고딕, 르네상스, 이슬람의 여러 요소를 건물의 외관이나 내부 장식에 사용하는 건축기법이다.현재 누에바 광장 쪽의 시청사 정면은 건축가 리오스(Demetrio de los Ríos)와 마론(Balbino Marrón)이 19세기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새롭게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이 시청사는 세비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자 랜드마크(Landmark)라고 하는데... 글쎄 나는 골목길의 자그마하고 아기자기한 성당들이 훨씬 더 예뻐 보인다.

시내 가운데쯤에 누에바 광장(Plaza Nueva)이 있는데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된다. 광장 한쪽에는 12세기 초 카스티야 왕국의 왕이었던 페르난도 3세(Pernando III) 기마상이 우뚝 솟아있다. 페르난도 3세는 스페인 서북부에 있던 조그마한 레온왕국(Kingdom of León)을 카스티야왕국과 완전히 통합시킨 위대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스페인은 12세기에 아라곤(Aragon)왕국, 나바라(Navarra)왕국, 카스티야(Castilla)왕국 그리고 남부 안달루시아지방의 무슬림 왕국인 그라나다(Granada)의 네 나라가 있었지만 우리나라 부족국가 시대처럼 그 이전에는 훨씬 더 많은 작은 나라들이 있었다고 한다. 


(2) 고대 도시 코르도바(Córdoba)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앙에 위치한 코르도바는 세비야에서 약 135km 북동쪽에 위치한 고대도시로, 세계 최대 규모의 메스키타(Mezquita/회교 모스크)와 중정(中庭)이 아름다운 알카사르 성채, 도시 가운데를 흐르는 과달키비르 강에 설치된 로마교 등이 볼만하며, 무데하르 이슬람 양식과 유럽 여러 고대 건축양식들이 복합적으로 사용된 건축물들로 들어차있는 코르도바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코르도바는 7세기, 이슬람에게 점령되는데 아브드 알 라흐만 1세(Abd ar-Rahman I)는 우마이야 왕국을 건설하고 수도로 삼았다. 서양의 칼리프라고 불리는 라흐만 1세에 의하여 코르도바는 유럽 최대의 도시로 발돋움 하였고, 유럽에서 가장 앞선 문화를 꽃피웠던 도시로 알려졌다.
13세기 들어 카스티야의 왕 페르난도 3세에게 정복되어 그리스도교 국가인 스페인에 합병되었고 1482년 스페인 최초의 종교재판소가 설치되었으며, 1492년, 이사벨 여왕이 이슬람 최후의 보루였던 그라나다를 공략하여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어인들을 최종적으로 몰아낼 당시 이사벨 여왕 부부가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같은 해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신대륙 탐험을 떠나기 전에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을 알현한 곳도 이곳이다.
알카사르(Alcázar)는 성이라는 스페인어로, 도시마다 거의 있는데 이곳 코르도바의 알카사르가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졌는데 성곽 자체의 웅장함이나 아름다움 보다 중정(中庭:정원)이 특히 아름답다고 한다.
메스키타(Mezquita)는 원래 스페인어로 모스크(Mosque)를 뜻하는 일반명사인데 특히 이곳 코르도바에 있는 이슬람사원의 모스크를 일컫는 고유명사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슬람 사원은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되었고 이슬람 모스크는 가톨릭 성당의 종탑으로 개조되었는데 스페인에 남아있는 메스키타(모스크/종탑) 중에서 최대 규모라고 한다. 현재 이 성당의 명칭은 ‘코르도바 산타마리아 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Córdoba)이다.
도심의 과달키비르 강을 가로지르는 로마교는 2천 여 년 전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건설된 다리라고 하는데 16개의 아치가 있고 길이는 223m라고 하는데 너무나 아름답다. 다리 옆에는 로마교를 지키기 위하여 세웠다는 요새인 칼라오라탑(Torre de la Callahorra)이 있다.


<사진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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