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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의 나라 스페인<1>-1

작성자 백충기

등록일 2019.12.06

조회 726

추천 19

정열의 나라 스페인(Spain/España


스페인은 유럽 대륙에서 남서쪽으로 삐쭉 내민 이베리아 반도(Iberian Peninsula)에 위치하며, 피레네 산맥(Pyrenees)을 국경으로 프랑스와 맞닿아 있는데 피레네 산맥 가운데에는 작은 나라 ‘안도라(Andorra / 인구 8만) 공국(共國)’이 있다.
이베리아 반도의 서쪽은 대서양을 마주한 포르투갈(Portugal), 동쪽이 스페인(Spain)이다. 남쪽은 지브롤터 해협(Strait of Gibraltar/ The Pillars of Hercules)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대륙 북단의 모로코(Morocco)와 마주하고 있으며 동쪽은 지중해(Mediterranean Sea)이다.

   

<스페인 역사>
스페인 북부, 산탄데르(Santander) 지방의 선사시대 유적인 알타미라(Altamira) 동굴벽화가 보여주듯 스페인의 역사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약 500년간은 로마의 지배기로 이 지역을 히스파니아(Hispania)라고 했다. 당시 스페인은 덤불이 우거차고 토끼들이 많이 살았다는데 히스파니아란 ‘토끼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이후 북유럽의 게르만족이 잠시 차지하였다가 7세기 초 아프리카의 무어(Moor)족이 침공하여 이슬람국인 그라나다(Granada) 왕국을 건설하고 15세기 말까지 800여 년 간을 통치하는데 이때 이슬람 건축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알람브라(Alhambra) 궁전, 헤네랄리페(El Generalife) 정원 등이 건축된다.
15세기 말,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국인 동남 해안지방의 그라나다(Granada) 왕국과 북부 피레네 산맥을 중심으로 한 바스크(Basque) 지방의 나바라(Navarra) 왕국, 북동부 지역의 아라곤(Aragon) 왕국, 이베리아 중부의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카스티야(Castilla) 왕국의 4개국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서쪽은 지금처럼 포르투갈(Portugal)이 있었다. 1474년, 이사벨(Isabel)여왕 1세는 온갖 우여곡절 끝에 아라곤의 페르난도(Fernando) 2세와 정략결혼하고 카스티야의 왕위를 쟁취하는데 결혼당시 이사벨이 18세, 페르난도가 17세였다. 가톨릭 신자였던 이사벨 여왕은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하여 총력을 집중하는데 결국에는 이슬람 국가인 그라나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나바라 왕국까지 합병하며 스페인 통일의 어머니로 추앙받는다.
이사벨 여왕은 용기와 배짱이 두둑하여 1492년 이탈리아 탐험가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에게 자신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패물까지 처분하여 배를 대어주는 이른바 벤처 투자를 하는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여 엄청난 부를 안겨주어 스페인의 황금기를 이끌어낸 여왕으로 유명하다. 그 이후 해양대국, 스페인 무적함대의 밑거름이 된 것도 이사벨 여왕의 업적이라고 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피사로(Francisco Pizarro), 코르테즈(Fernando Cortés) 등을 앞세운 중남미 대륙의 진출로 스페인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식민지를 차지하게 되었고 엄청난 부를 쌓게 되는데 후세에 약(藥)이 되었는지 독(毒)이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들 정복자들이 중남미 인디오들에게 저지른 숱한 만행들은 지금까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로 남아있고 유럽 백인들의 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디오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은 볼리바르(Bolivar), 체 게바라( Che Guevara)와 카스트로(Fidel Castro) 등으로 대변되는 혁명가들을 낳아 남미에 좌파정권이 들어서는 빌미가 되었다. 또 자본주의 선진국에 종속되어 불이익을 강요당하는 후진국들의 탈 종속(脫從屬)을 부르짖는 해방신학(解放神學)이 싹트게 된다.
이로부터 수세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중남미의 대부분 나라들은 독립을 쟁취하였지만 현재 인디오들은 가난에 허덕이며 모국어 대신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으니 스페인의 자랑일까, 수치일까??
스페인 내전(1936~1939) 이후 프랑코 정권이 들어서서 36년 간 군부 독재를 겪었고 그 이후 민주화를 이루었으나 현재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1>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포르투갈의 중세도시 포르투(Porto)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 30분을 달려 스페인에 첫 발을 내디딘 곳은 성 야고보의 유해가 모셔져있는 가톨릭 성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였다.
포르투에서 산티아고에 이르는 주변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언제 국경을 지났는지 스페인의 작은 도시 비고(Vigo)를 지나는데 작은 강과 그 주변으로 그림처럼 들어선 조그만 도시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스페인 북부 갈라시아(Galacia) 지방에 있는 인구 13만의 작은 도시 산티아고(Santiago)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라면 누구나 평생에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의 종착점이다.
이곳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Cathedral of Santiago de Compostela)에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제일 먼저 순교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모셔져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는 ‘별빛 들판의 성 야고보’라는 의미로, 야고보의 시신을 발견한 사람이 신의 계시를 받고 별빛이 비추는 들판을 따라 걸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성 야고보 이야기>
성 야고보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인데 어부 제베대오의 아들로 동생 요한과 함께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는데 어머니는 살로메이다. 이들 형제는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애제자로, 항상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는 최측근이었고 예수님이 야고보를 아꼈을 뿐 아니라 야고보도 예수님을 극진히 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형제는 성질이 불같아서 예수님이 ‘천둥의 아들들’ 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다고 한다.
신심이 깊었던 살로메는 어느 날 예수님을 찾아와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 20,21) 라고 청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형제에게 묻는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태 20,22) 그러자 둘이 동시에 “예, 할 수 있습니다!” 이 맹세를 들은 주님은 예언의 말씀을 하신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마태 20,23) 주님이 말씀하신 잔은 바로 죽음의 잔, 고통의 잔,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잔이라는 뜻을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낙담에 빠져있던 이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라고 하시자 야고보는 즉시 실천에 옮긴다. 당시 땅의 끝은 동쪽은 히말라야, 서쪽은 이베리아 반도였다고 한다.
야고보는 두 제자와 함께 수만리 떨어진 땅 끝 이베리아반도(스페인)의 갈라시아 지방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 마침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일어나(주후 44년) 야고보는 체포되어 사형을 당한다.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했으며”(사도 12,2)
이리하여 야고보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서 첫 번째 순교자가 되는데 이는 어머니 살로메가 간청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예수님의 오른쪽에”,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라는 모든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성 야고보를 중세 스페인어로 “성 이아고(Saint Iago)”라고 했는데 이 말이 합쳐져서 산티아고(Santiago) 가 됐는데 스페인어로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 이다. 또 일명 산디에고(San Diego)로 표기되기도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성 야고보는 제자 둘과 함께 스페인 북부 갈라시아(Galacia)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돌아오며 자신이 죽으면 복음을 전한 이곳 땅 끝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야고보 순교 후 두 제자는 야고보의 시신을 모시고 이곳 갈라시아로 와서 묻으니 곧 오늘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이다.
그러나 실은 야고보의 무덤을 찾지 못하다가 814년, 은수자(隱修者) 성 펠라지오가 한밤중에 빛나는 이상한 빛을 보고 부근의 동굴 속에서 유해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즉시 성 야고보의 유해를 모시고 이곳 산티아고로 와서 모셨다고 한다. ‘별빛이 비추는 들판을 따라 걸어서....’ 그 후 유해를 봉안하기 위한 성당 건축에 착수해 829년 첫 성당 건물이 완공되어 유해를 모셨고, 현재의 건물은 18세기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성 야고보의 유해를 모신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으로 가는 순례길은 보통 프랑스의 생장(Saint-Jean-Pied-de -Port)에서 스페인과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 산맥(Pyrénées)의 기슭을 따라 걷는 길인데 대략 800km 정도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25일 정도, 나이 먹은 사람들은 한 달 반 정도 걸린다고 하며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이 밖에도 여러 갈래의 순례길이 있다. 이곳은 세계 여러 나라의 순례자들이 찾지만 특히 한국의 순례자들이 많아서 우리가 갔을 때도 여러 한국 팀을 만날 수 있었는데 단체로 오는 사람들도 있고 혼자 오는 젊은이들도 있어서 놀라웠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은 골목길을 따라 언덕 위쪽으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데 우선 웅장한 건물에 놀라게 된다. 본당 건물 앞에는 널찍한 광장이 시원스럽고 부속건물들도 엄청나게 많고 웅장하다. 뒤쪽에도 널찍한 공원도 조성되어있고 건물들 사이로 여유 있는 공간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시내 어느 곳에서나 성당을 향하여 언덕의 골목길을 오르다보면 길바닥에 놋쇠로 2m 정도 간격으로 가리비모양을 붙여 놓았는데 방사선 모양의 선들이 모이는 방향으로 따라가면 성당에 도착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천 년의 세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조개껍질을 매달고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온 길로, 산티아고 순례길에도 위와 같은 가리비껍질 표식이 이어져 있다고 한다. 성당 앞 광장에는 조개껍질과 조롱박을 매단 지팡이를 팔고 있다. 이 순례길의 순례자들을 지키기 위하여 12세기에 “산티아고 기사단(Orden de Santiago/일명 성 야고보의 검우회(劍友會)”이 조직되었다고도 한다. 지금도 스페인군은 전쟁 때 돌격함성이....‘¡Santiago y cierra, España!’ 산티아고와 함께 돌격, 에스파냐!

대성당의 입구에는 야고보 성인의 동상이 있는데 모두들 만지고 입을 맞춘다. 대성당은 내부수리를 하는 중이어서 어수선한데 특히 이 성당의 자랑은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는 이름의 어마어마하게 큰  향로(香爐)를 성당 천정에 매달아 사제 8명이 줄을 당겨서 분향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수리를 하느라 칸막이를 하고 천으로 막아놓아 보이지 않는다. 성당 정문은 닫혀있고 뒷문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하고 있다. 다행으로 성 야고보의 유해는 참배할 수 있었는데 본당 제단 밑 지하에 모셔져 있었는데 너무나 작고 소박해서 서글픈 느낌이 들었고, 머리를 숙이고 기도를 드리니 눈물이 난다.
이곳에서 혼자 순례길을 걸어온 전북대 출신이라는 젊은이를 만났는데 회사 입사시험에 합격하고 짬을 내서 25일 동안 걸어 오늘 이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너무 대견해서 격려의 말을 건네고 순례 내내 들고 왔다는 태극기 귀퉁이에 격려의 글도 써 주었다. 맨 마지막에 “73세 세계배낭여행가 白忠基Augustino..”
그런데 이 녀석, 말은 안했지만 태극기의 깃대를 반대쪽에 매었다!! 멍청한 녀석... ㅎ
이곳에서 2박을 했는데 다른 곳은 가지 않고 이곳을 두 번 와서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그늘에 앉아 쉬다가 5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아줌마 둘... 45일 동안 걸어서 도착했다고 한다. 헐~


<사진설명>

1.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 2. 젊은 순례자 3. 성 야고보 참배객들 4. 성 야고보 관 5. 길잡이 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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